■ SSM, 중소상인 자생력·대기업 상생모색·정부 중재 '3박자' 필요
지난달 인천슈퍼마켓협동조합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천 옥류점에 대한 사업조정 신청으로 촉발된 기업형슈퍼마켓(SSM) 논란이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5일 대기업의 SSM 사업조정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긴 이후 중소상인들의 사업조정 신청이 크게 늘었고, 22개 소상공인단체의 모임인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가칭)가 6일 정식으로 출범했다.
7일에는 중소기업청 차장을 단장으로 '사업조정 종합점검단'이 구성됐고, 정부 차원에서 제주도슈퍼마켓협동조합과 같이 중소 유통업자의 자생력을 키우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대체로 대기업과 중소상공인 모두 합의점을 상생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지만,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일단 중소상공인들은 대기업의 SSM 진출을 '유통시장 독점'으로 규정해 그에 따른 영세 상인의 몰락을 당연한 귀결로 보고 있다. 대형자본을 등에 업은 SSM이 들어오면 중소 업체의 폐업이 속출하고 지역 경제도 황폐화한다는 주장. 이에 대형 유통업체들은 경쟁을 통해 산업의 전반적 발전을 이끈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소비자 권익을 바라보는 양측의 의견 역시 엇갈린다. 위생적이고 안전한 제품을 쾌적한 쇼핑 환경에서 값싸게 공급한다는 대기업의 주장과 달리, 중소업체들은 대형업체의 독과점으로 결국 소비자는 선택권을 제한 받게 된다고 반박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길이 좁아지고 유통업자의 권한만 커진다는 이야기다.
일부 시민 단체들도 이 같은 중소상공인들의 의견에 뜻을 같이 하지만,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기업의 SSM을 일방적으로 거부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SSM 입점을 원한다며 지자체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유통 전문가들은 중앙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한국유통협회 회장인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SSM 논란은 사업조정제도가 있다는 걸 자영업자들에게 알려줌으로써 그간 쌓여 있던 불씨가 폭발ㆍ확산하는 모양새"라면서 "특히 앞으로는 사업조정 대상이 되지 않는 대형 유통업체의 기존 점포, 프랜차이즈 점포 등을 상대로 한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에 판단을 맡길 게 아니라 중소유통업체의 경쟁력을 키우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중앙 정부가 직접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정부가 대형 유통업체의 규제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원종문 남서울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SSM 논란 해법의 두 축 중 중소상공인 지원책은 차츰 구체화하지만 대형 유통업체 규제 방안은 아직 논의가 활발하지 못하다"면서 "균형발전 국토계획이용법상 조례 변경 등을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서비스협정 국제규정을 에두르면서도 SSM의 출점 제한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일각에서는 대형유통업체의 입점에 대해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중소상인단체를 중심으로 힘을 집결시켜 미래의 유통파고를 헤쳐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 SSM '슈퍼'에 맞짱 뜬 '미니 군단'
제주시 이호동 제주도슈퍼마켓조합 공동물류센터 옆 부지에서는 이달 중순 가동을 앞둔'제2 공동 물류센터'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32억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된'제2 공동물류센터'에는 최첨단 냉장ㆍ냉동 설비가 갖춰진 지하 창고가 있다. 채소ㆍ과일 등 '신선 식품' 1,000여 가지를 보관하고 포장하기 위한 시설이라는 게 조합 측의 설명이다.
조합측은 전국 각지 산지와 직거래를 통해 구입 가격을 낮추는 한편, 제주 특산물을 육지에 공급하며 맞교환 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물류센터에서 직접 용량별로 포장을 해서 제공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가격표만 붙여 팔면 되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전국에 슈퍼마켓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물류센터는 10여 곳이다. 하지만 제주조합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신선 식품을 다루는 물류센터 건립에 나선 것은 '제 2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현재 제주 곳곳에는 대기업의 대형마트 4곳과 농협의 하나로마트 26곳(대형 마트 5곳 포함)이 진출해 있다. 아직 기업형슈퍼마켓(SSM) 진출 소식은 없지만, 제주 출신 유통업자가 SSM 형태의 매장을 20여곳 세운다는 소식으로 긴장감이 높아가고 있다.
전계하 조합 상무는 "소비자들은 신선 식품을 사기 위해 대형유통점에 들렀다 공산품을 함께 사는 경우가 많은데 동네 슈퍼가 가장 취약한 게 이 부분"이라며"소비자들이 동네 슈퍼에서도 신선한 먹거리를 믿고 살 수 있다면 그 경쟁력은 훨씬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슈퍼조합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도와 도의회를 상대로 대형마트와 SSM이 들어서기 전 대기업과 영세상인 대표자를 포함한 '사전조정협의회'의 논의를 거치도록 조례 개정을 요구해 왔고 지난달 이를 관철시켰다.
하지만 제주슈퍼조합측은 조례 개정이 전부가 아닐 뿐 아니라 정답도 아니라고 했다. 조병선 이사장은 "조례 개정의 효력은 일시적인 것이고 여기에만 기대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라며 "분명 유통 환경의 폭풍우가 몰아칠 게 분명한 상황에서 준비를 착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주슈퍼조합이 '유비무환(有備無患)'정신을 갖게 된 것은 15년 전부터'제 1물류센터'을 통한 공동 구매와 원가 절감 등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대형마트의 파상 공세를 견뎌냈던 경험 덕분이다.
한발 더 나아가 제주슈퍼조합은 생선류와 육류를 다룰'제3 물류센터'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조 이사장은 "제주도 측과 부지 마련 등을 논의 중"이라며 "이것이 완성되면 모든 신선 식품을 망라하고 경쟁력도 몇 배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합 측은 또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에서 만든 공동 브랜드'코사마트'의 자체브랜드(PB) 상품 수도 늘려나갈 계획이다. 현재 양곡, 우유, 화장지, 건어물 등을 일반 상품보다 20% 싸게 팔고 있다. 물류 센터에서 포장 기계를 통해 적은 용량으로 낱개 포장해 팔기 때문에 관광객들 사이에 반응이 좋다는 것이 조합측의 얘기다.
제주=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 SSM, 해외에선 '윈윈 모델' 찾았다
대형 업체들의 유통 지배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다. 이에 따라 유통 선진국에서는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정부가 내세우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논리와는 달리 프랑스 독일 영국 등 WTO 회원국들은 도시 계획이나 노동 시간 제한 등을 통해 대형 유통업체로부터 중소 상인들을 보호하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는 1990년 만든 '라파랭법'을 통해 대형 유통업체의 신규 점포 출점시 지역위원회로부터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연면적 300㎡ 이상 모든 점포가 규제대상이다. 위원회에는 소형 소매업자의 대표가 참여한다. 독일은 소위 '10% 가이드라인'을 적용한다. 대형마트가 입점 계획을 제출하면 인근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해 중소업체 매출이 10%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 대기업의 사업계획을 취소시키는 내용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대규모 소매점포입지법'이 대표적인 예다. 1,000㎡ 이상의 대형 마트를 개설할 때는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하며, 주민설명회를 의무적으로 열어야 한다. 지자체는 교통ㆍ소음ㆍ주차 등 환경영향 평가를 실시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WTO 가입에 따른 이행 조건의 하나로 지난 1월부터 단일 매장에 대해 100% 외국인 소유를 인정하고 있는 베트남의 경우도 매장을 추가로 열려면 해당 지자체의 영업허가가 필수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 1호점을 연 이후 9월을 목표로 2호점 오픈을 추진하던 롯데마트의 베트남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 정치권에서도 기업형슈퍼마켓(SSM) 제한과 관련된 법률 개정안 발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실제 통과 가능성보다 지역 민심을 의식한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18대 국회에 계류 중인 SSM 규제 법안은 총 15건. 그 중 10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으로 현행 신고제를 등록제나 허가제로 바꿔 SSM의 출점 자체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영업시간과 품목까지 제한한 경우도 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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