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 지음·함규진 옮김산책자 발행·276쪽·1만2,000원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고 했다. 이 속담은 여러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게으르니까 못살지’라는 원색적인 비난, 그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 국가의 정책적 실패에 대한 핑계, 나라도 못 하는 일이니 보통 사람들에겐 더군다나 책임이 없다는 판단 등이 그것이다.
이 책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원제 ‘The Life You Can Save’)는 이런 견해들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들’의 가난은 바로 ‘우리들’의 문제라고, 작은 실천으로 그들을 구할 수 있으니 지금 당장 행동하자고 주장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이를 보면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일단 구하고 볼 일이듯,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살리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에>
그는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기부를 권한다. 구세주가 아니어도, 부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작은 돈으로, 돈이 안 되면 시간을 바치는 자원봉사로,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 남을 도와야 하는지 설득하기 위해 그는 두 가지 목표, 절대 빈곤층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을 일깨우고 누구든 더 많은 소득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주력한다. 우선 기부를 거부하거나 망설이는 이유부터 하나하나 짚는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그들보다 우리가 먼저다, 왜 나만 도와야 하나, 그들의 가난은 내 탓이 아니다, 남을 돕고 말고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지 의무가 아니다, 공짜로 돈이나 식량을 주면 의존하는 습관만 길러준다…. 그런 생각이 뭐가 잘못됐는지 논박한 다음, 어디에 얼마나 기부해야 좋을지, 기부가 활발해지려면 어떤 수단과 장치가 필요한지 많은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제안하고 설명한다.
빈곤 추방에 동참할 실천 전략이 겨우 기부라니, 너무 싱거워 보이기도 한다. 가난, 특히 목숨을 위협하는 절대빈곤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작은 선의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박애주의’는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부익부 빈익빈을 가져오는 세계 경제 시스템을 방조하는, 그리하여 가난을 추방할 근본적 해결책인 정치 개혁을 가로막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해야)하는 이유는 거액 기부자로 유명한 빌 게이츠의 에피소드가 말해준다. 2007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있었던 일이다. “서방 세계가 아프리카에 쏟은 원조가 (가난을 퇴치할)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경제학자 윌리엄 이스털리의 지적에 빌 게이츠는 이렇게 대꾸했다. “저는 가령 한 아이가 살아났다고 할 때 그것이 국민총생산 증가를 뜻하기 때문에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생명은 생명 자체로 값지지요.” (159쪽)
지은이 피터 싱어(63)는 ‘대형 농장 시스템에서 잔인하게 사육된 동물들을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일인지’ 묻는 책 <죽음의 밥상> 을 써서 잘 알려진 실천윤리학자다. 죽음의>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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