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J 리처슨 등 지음·김준홍 옮김이음 발행·511쪽·2만5,000원
150년 전 태동한 진화론은 생물학뿐 아니라 인문ㆍ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틀에 이르기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패러다임으로 군림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진화론 자체도 진화한다는 사실이다. 찰스 다윈(1809~1882)의 <종의 기원> 에 뿌리를 둔 진화론은 진화심리학, 진화사회학, 인간행동생태학 등 다양한 갈래로 분파되는 ‘계통수’를 이룬다. 종의>
<유전자만이 아니다> 는 이 계통수의 중요한 한 줄기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유전자-문화 공진화론(Gene-Culture Coevolution)에 대한 저작이다. 유전자만이>
저자 피터 J 리처슨과 로버트 보이스는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로 진화생물학의 분석 방법을 이용해 인간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현대 진화론에서는 자연선택의 단위, 곧 진화가 이뤄지는 기본 단위를 유전자로 인식한다. 저자들은 이런 지배적인 관점에서 탈피해 ‘문화’라는 요소 또한 인간의 진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에서는 유전자 중심의 진화심리학, 인간생태학과는 달리 인간 행동을 유전적ㆍ문화적ㆍ환경적 원인의 상호 작용으로 설명한다. 또 유전자의 변형은 심리학적, 동물행동학적 요인뿐 아니라 문화적 환경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저자들은 이 개념을 증명하는 사례로 우유의 소화와 관련한 형질 변화를 예로 든다.
우유는 모든 인간에게 유익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대다수 성인에게는 우유에 들어있는 당 성분인 락토오스를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가 부족하다. 이 분해효소는 생후 18개월부터 줄어들다가 4세 무렵이 되면 거의 사라진다. 진화론의 적응주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포유류에게 모체의 젖이 필요한 것은 유아기 때의 일이므로 성체에게 락토오스 분해 효소가 필요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유럽과 서아시아 등의 유목민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이 분해효소를 비교적 충분히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낙농업 발달이라는 문화적 요인이 락토오스 분해효소 분비와 관련된 유전자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 이렇게 확산된 유전자는 다시 문화적 환경을 변화시키는데, 아이스크림이나 푸딩처럼 우유를 많이 사용하는 음식 문화의 발달이라는 ‘변이’가 그것이다.
문화와 유전자의 상호영향에 대한 저자들의 관점은 ‘모든 문화는 진화론의 시각에서만 이치에 맞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는 인간 행동에 대한 통합 이론으로서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가능성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진화적 사건의 진술로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로 인간에 대한 공진화론적 규정을 시도한다.
또 유전자와는 달리 문화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변이의 형태와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인간은 자신의 진화에 대단히 많이 관여하고 있다’는 논리도 성립한다. 저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엄밀한 관찰을 통해 문화적 진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다. 문화의 진화에 대한 개요도를 손에 넣은 뒤에야 우리는 인간을 종종 고통에 빠뜨리는 작용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450쪽)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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