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 조선 무관의 일기, 익명에서 역사로 걸어나오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 조선 무관의 일기, 익명에서 역사로 걸어나오다

입력
2009.08.10 04:46
0 0

문숙자 지음 너머북스 발행·252쪽·1만4,000원

조선 후기의 무관 노상추(盧尙樞.1746~1829)는 열 일곱 살 때 시작해 생을 마감한 여든 네 살 때까지 일기를 썼다. 무려 68년 동안 이어진 그의 일기에는 조부, 부모, 형제, 자식, 손자는 물론 먼 친척, 이웃, 하인 등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노상추를 중심에 둔 그들의 이야기가 18, 19세기 조선사회의 일상사를 보여준다.

최근까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한 문숙자 박사가 노상추의 일기로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를 냈다. 일기의 존재는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한글로 풀어 책을 낸 것이다.

노상추는 아버지 노철의 명을 받고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아버지 역시 열 아홉 살 때부터 일기를 썼다. 따라서 노상추가 일기 쓰기를 물려받았다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기가 내밀한 개인 사연보다 집안의 기록을 더 많이 담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기가 가문의 기록인 것만은 아니다. 무미건조한 기록과 그 사이사이 비치는 그의 고민과 생각이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무인으로서 그 시대를 살았던 노상추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상추를 가장 크게 규정한 것은 무인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집안은 무반 가문이다. 그가 그토록 존경한 할아버지 역시 무인이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문인 중심 사회였다. 노상추도 애초 문인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문인 되기가 훨씬 어려운 현실적 문제에 부닥치면서 무과로 방향을 틀었다. 방향 전환은 동생,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른 다섯 나이에 무과에 합격하고 평생을 무인으로 살았지만 일종의 자격지심 같은 것을 버릴 수는 없었다. ‘옛적에 이름난 유학자들은 무부(武夫)를 비류(鄙類.천하고 비루한 무리)라 칭했는데…’ 그의 일기에 나오는 이 대목은 양반의 한 축에 들면서도 편치 못한 그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예.의.염.치를 마음 속에 스스로 새겨 자신의 길을 향해 바르게 나아간다면 어찌 우리 무인을 폄훼할 수 있겠느냐’는 또 다른 대목은 문인에 대한 위축감이 도리어 그를 성실하고 곧은 관직자로 만드는 원동력이 됐음을 알 수 있다.

변방 갑산에 근무할 당시 자신이 기생을 진심으로 연모하는지 아니면 단순한 관계일 뿐인지 끊임없이 고뇌하다가 ‘장부가 색에 뜻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다 거짓’이라고 적은 부분은 그의 인간적인 고민을 보여준다.

책에는 출생과 결혼, 과거준비, 관직생활, 노비와의 관계 등 그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결혼만 놓고 보자면 그는 세번 결혼하고 세번 사별했다. 반면 형수는 형이 죽은 뒤에도 재혼하지 않고 여동생 역시 매제가 사망한 뒤에도 수절했다. 여기에서 양반가 남성은 혼인을 여러 번 했던 반면, 양반가 여성은 재혼할 수 없었던 당시의 풍속을 확인할 수 있다.

후대에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는 무관이지만, 노상추가 남긴 꼼꼼한 일기는 그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당시 사회의 여러 측면을 짐작하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박광희 문화전문 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