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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클럽메드 G.O 정우진·조성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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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愛] 클럽메드 G.O 정우진·조성윤씨

입력
2009.08.10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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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엔 하늘빛 물감을 풀어헤친 듯한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한겨울엔 하얀 눈이 덮인 산골짜기 곳곳을 스키를 타고 누빌 수 있는 곳, 그것도 업무시간에.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더 즐겨야 윗사람이 좋아하는 직장.'

부러워서 입이 쩍 벌어진다. 흔히 연봉 순으로 짚어내는 기계적인 '신의 직장' 순위를 근무환경 기준으로 따진다면 클럽메드 'G.O'(Gentle Organizerㆍ현지 리조트 상주직원)도 적어도 윗자리는 떼놓은 당상일 것이다.

전세계 80여 곳의 리조트에서 일하는 클럽메드 직원이 G.O다. 주요 업무는 리조트를 방문한 고객에게 스포츠 강습부터 요리, 관광, 쇼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국내에도 약 40여명이 각국 현지 리조트에 체류중이다. 겨울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정우진(29) 조성윤(27) G.O를 만나 '천국' 얘기를 들어봤다.

놀면서 번다고?

이들에게 눌러 붙은 딱지는 '탱탱 놀면서 나무랄 데 없이 돈을 벌어간다'는 선입견. 웬걸 이들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웃는다. 수긍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알쏭달쏭하다. 먼저 입을 뗀 조씨. "다들 부러워하죠. 한낮에는 시원한 바다 속 알록달록한 산호초를 구경하기도 하고 밤이 되면 춤추고 노래하고, 또 겨울이면 스키장에서 살다시피 하니까요."

부러움에 몸서리가 쳐지는데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주업무는 스스로가 아닌 고객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서비스 직인 걸요." 즉 본말이 전도됐단 얘기다. 좋은 환경은 부차적이라는 얘기고, 서비스 정신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정씨도 "아무리 좋아 보여도 일은 일, 속한 조직이 있고 규율 방침 등 까다로운 요구조건에 걸맞게 프로정신도 필요한 일"이라고 거든다.

그래도 부러움이 쉬이 가시질 않는다.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스포츠 강습을 하는데 이 때 신나게 재주껏 스포츠를 즐기는 게 아니라 고객 한명이라도 제대로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쓰다가 보면 고역이 따로 없다(정)"고 재차 강조다.

결정적 한마디도 날렸다. 정작 놀고 싶으면 휴가를 내 자비로 다른 곳에 있는 리조트를 찾는다는 것. "일할 때는 스포츠를 제대로 즐길 수 없으니, 놀고 싶다면 다른 직장인들처럼 우리도 휴가를 내고 돈을 써서 스포츠를 즐기러 간다(조)"고 했다. 이번엔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세상에 '공짜로 노는 일'이 있을까.

팔방미인이라도 괴로워!

G.O가 되려면 우선 전문분야가 필요하다. 정씨는 스키관련 자격증이 수두룩한 스키 전문가다.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도 땄다. 조씨도 스포츠가 전문. 스쿠버 다이빙과 스키는 기본이고 보디빌딩 에어로빅 심폐소생술 등 관련 자격증이 열 손가락을 넘는다.

두 사람 모두 어렸을 적부터 스키를 즐겼던 경험이 직업으로 이어졌단다. 조씨는 대학에서 운동처방학을 전공한 것이, 정씨는 필리핀과 호주 등지에서 스키강사로 일한 경험이 G.0로 성장한 밑거름이다.

그런데 정작 둘은 스포츠 능력보다 성격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성격이나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 일을 더 잘한다는 것. "G.O가 담당하는 일은 범위가 없어 저녁식사 후 G.O들이 손님들을 위해 쇼를 하는데, 이때 댄스나 노래를 하려면 실력보다는 털털한 성격이 더 필요하다(정)"고 했다. "들어와서 배우면 되는 스포츠 능력보단 손님들을 대하는 태도, 국적과 문화가 다른 이들과 교류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조)"고 덧붙였다. 24시간 고객들과 함께 머물며 즐거움을 제공하는 일인 까닭이다.

눈치도 빨라야 한다. "각국에서 오는 어린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문화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며 "일례로 일본 어린이들은 남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화장실이 급하더라도 꾹 참는 특징이 있어 아이들의 표정을 읽고 세심하게 챙겨줘야 한다(조)"는 것이다. 바다에 인접해 있지 않은 중국인들이 수영과 각종 수중 장비를 다루는 데 서투른 점도 미리 눈여겨봐둬야 한단다.

또 1년 중 한두 달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해외 근무다. 체력도 좋아야 하고 외로움을 이기는 법도 터득해야 한다.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정작 해외로 오면 다시 국내로 돌아가고 싶고, 국내에 있으면 또 다시 나가고 싶어 늘 갈등의 연속(조)"이라고 토로했다. 더구나 "해외에서 아프면 아무리 동료가 잘해줘도 가족이 생각나는 법(정)"이니까.

사람이 아름다워야 최고의 직장!

연봉이나 처우, 근속기간 등이 궁금해질 수밖에. 둘이 어렵게 입을 뗐다. "일단 조직이다 보니 당연히 업무평가를 받고 평가에 따라 시즌별 계약을 맺고 있다"고 했다. 가고 싶은 리조트를 마음껏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키를 좋아한다고 무조건 스키 리조트에서 근무하라는 법은 없고 각 리조트별 필요한 G.O의 수에 맞춰서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근무환경은 신의 직장이지만 안정성과 연봉면에선 아니란 얘기다.

다만 나이와 성별 제한이 없고 근속기간도 생각보다 짧지 않다. 회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 근속기간이 길어진다. "전세계 G.O 중에는 대대로 30~40년을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직업에서 일하다가 온 고령 G.O들도 꽤 많다(정)"고 했다.

듣다 보니 우리가 꿈꾸는 신의 직장 이미지가 스멀스멀 사라진다. 하지만 둘은 신까지는 몰라도 '최고의 직장'인 것은 맞다고 추켜세웠다. 아름다운 자연을 껴안은 환경 덕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 덕분이란다.

G.O들이 한 리조트에서 매일 얼굴을 대하는 고객은 어림잡아 500명을 훌쩍 넘긴다. 이들과의 숱한 사연도 남겼을 터. "2년 전쯤 몰디브에서 만난 일본인 신혼부부는 저를 일본으로 초대해 함께 지낸 적도 있고(조), "일하면서 만난 세계 각지의 친구들과 매일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서로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끈끈한 정이 느껴진다(정)"는 것.

이들에게 신의 직장은 '일=놀이'가 아닌 '고객=친구'가 되는 곳.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아는 사람들이 툭 튀어나올 때 가장 행복하다는 둘은 기자에게도 다시 만나면 제발 '아는 척' 좀 해달라고 웃는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사랑 받는 노래 가사가 그저 수사에 불과하겠는가. 함께 부대끼는 사람이 아름다워야 최고가 되는 건 다른 직장도 마찬가지일 게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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