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도 끊지, 전기도 끊지, 옥상에 최루액 뿌려대지. 전쟁터가 따로 없네…."
하청 노동자 두 명이 공장 옥탑에서 파업 농성 중이다. 잠시 뒤 경찰 사이렌과 함께 전경들 방패 두드리는 소리. 이름없는 노동자들의 비명이 어지럽다.
5일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막을 연 구태환 연출의 연극 '마땅한 대책도 없이'의 한 장면이다. 연일 머리기사로 등장한 쌍용차 파업 현장을 옮긴 것 같다. 아서 모리슨이 100여년 전 공황상태인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쓴 동명소설을 2009년 대한민국 현실에 맞게 각색한 작품으로 분배의 불평등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미국놈들 집 값 떨어지는 거랑 우리랑 뭔 상관이야. 왜 우리가 개고생하는 거냐고." 계약직 노동자인 정만의 말이다. 정만과 친구 만석은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고졸의 '땜쟁이'였다. 이들은 얼떨결에 파업에 가담했다가 일자리를 잃고 전국을 떠돈다. 딸에게 피아노를 사주려고. 고왔던 아내의 고생을 덜기 위해.
하지만 현실은 냉담하다. 미국발 경제위기로 꽁꽁 얼어붙은 경기 탓에 일자리를 구하기는커녕 무료급식으로 연명하는 노숙자만 넘쳐난다. 실제 서울역 노숙자들의 대화를 녹취해 구성한 "서민을 위한다는 놈들이 맨날 지네들끼리 싸움질만 하고!"등의 대사는 적잖이 적나라하다. 소품인 '용상 참사는 강제 진압 때문이다'라는 피켓도 관객이 연극을 현실로 착각하게 하는 장치다.
서글픈 내용이지만 오락적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욕쟁이 국밥 할매의 구성진 경상도 사투리, 노동자와 노숙자들의 욕설과 속어 같은 날것의 언어, 공무원의 과장된 어조 등은 웬만한 개그보다 우습다.
연출가 구태환(37)씨는 "노동력 밖에 없는 사람들이 파업으로 인해 그조차 팔 기회를 잃은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쌍용차 파업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은 아닌데 쌍용차 사태가 연극보다 더 극적이라 씁쓸하다"고 털어놨다.
첫날부터 만석이었단다. 무대에 수시로 흐르는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 가사처럼 대한민국 만석, 정만이들의 꿈은 이뤄질까. 답은 관객의 몫이다. 30일까지. (02)2055-1139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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