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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통령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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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대통령 이름

입력
2009.08.10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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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담대한 희망> 에 나오는 얘기다. 2000년 연방 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떨어져 낙담하던 그에게 한 미디어 컨설턴트가 한동안 일리노이주 주지사에 출마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9ㆍ11 테러’ 발생 직후인 2001년 9월 하순 그는 “정치역학이 변했다”며 돌연 태도를 바꿨다. 이유를 묻는 오바마에게 그는 신문 1면에 큼직하게 찍힌 활자 ‘오사마 빈 라덴’을 가리키며 “정말 운이 따르지 않는군요. 당신이 개명할 리 없고 정치 초년병이 별명을 쓰기도 그렇고. 유권자들이 공연히 의심할 텐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 한때 오바마(Obama)를 좌절케 했던 이름이 어느새 형용사로 변용돼 미국 젊은 층이 가장 즐겨 쓰는 단어의 하나인 ‘cool’을 대신하는 유행어로 떠올랐다고 한다. ‘You are so obama’라고 하면 ‘성격이 깔끔하다, 언행이 멋지다’는 칭찬을 뜻한다고 UCLA가 최근 펴낸 속어사전에 소개됐다는 것이다. 최근 그를 사회주의 악당으로 비방한 극우진영의 포스터가 LA시내에 나돌기도 했지만, 지난 4일 48번째 생일을 맞은 그로선 참으로 쿨하고 귀한 선물을 받은 셈이다. 카리브해의 한 섬나라는 이날 자국을 대표하는 산 이름을 오바마로 개명했다.

▦ 대통령 이름이 형용사로 사전에 등재된 사례는 우리가 더 먼저다. 국립국어원은 2007년 10월 한글날에 맞춰 출간한 책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 에 불경스럽게도 ‘노무현(놈현)스럽다’를 올리고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주는 데가 있다’는 뜻풀이를 달았다. 청와대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국가원수 모독’이라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으나 국립국어원은 “긍ㆍ부정적 가치판단을 떠나 그 말이 뜻하는 객관적인 사회상을 반영했을 뿐”이라고 대꾸했다. 이후 ‘영삼스럽다’ ‘대중스럽다’는 등의 단어도 비아냥대는 뜻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 부정적 뜻으로 대통령 이름이 형용사화하는 것은 거의 관례화됐다. ‘명박스럽다’를 인터넷 검색창에 쳐보면 반대진영이 만든 각양각색의 험악한 뜻풀이가 넘쳐난다. 우리사회가 이념으로 지역으로 계층으로 정파로 얼마나 갈라지고 대립하는지 잘 드러난다. 미디어법 충돌과 쌍용차 사태를 겪으면서 통합과 소통은 객쩍은 말이 됐다. 다시 오바마로 돌아가면 그는 앞의 책에서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강조한 간단한 원칙 즉 ‘네게 그렇게 하면 어떨 것 같니’라는 물음을 정치활동의 길잡이 중 하나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게 중도의 출발일 텐데.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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