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의 방북은 개인 자격이다. 개인 방문인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메시지가 있었겠느냐.”
청와대와 외교안보 부처 당국자들이 4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방북 이후 앵무새처럼 되뇌는 말이다. 이번 방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북핵 공조를 위해 북미가 먼저 가까워지는 상황을 경계하는 우리 정부의 내심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북한과 미국이 미국인 여기자 석방 교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끼어들 여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 당국자들은 자국민이 다른 나라에 억류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실용적 접근법을 택하는 미국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비록 북한의 요구이긴 하나 전직 대통령까지 직접 찾아가 억류 기자들을 ‘구출’해오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지는 않았을까. 6일로 각각 130일과 8일째 북한에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와 800연안호 선원의 처지를 떠올리면서 얼마만큼 책임감을 느꼈을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이들을 억류한 채 남한을 압박하는 북한의 잘못이 크다. 또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도 미국처럼 북한을 현실적인 상대로 인정하고, 조용한 물밑 교섭을 통해 해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 경비병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도 북측이 간접적으로 유감을 표시했지만 우리 정부는 계속 그들의 행태를 비난하고, 공식 사과만 요구하다 결국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
우리 국민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으면서 다른 나라의 방북 성과를 평가절하하는 우리 정부를 보며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무기력하고, 능력도 없고, 책임감마저 부족하다는 ‘3무(無) 정부’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상원 정치부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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