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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대구!" 알리미 나선 외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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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대구!" 알리미 나선 외국인들

입력
2009.08.07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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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대구 최대의 번화가 동성로 인근 T클럽. 외국인 4명과 대구 토박이 아가씨가 한쪽 모퉁이 탁자에 노트북 컴퓨터를 놓고 둘러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9월호에는 '파이터 클럽'을 소개하는 게 어때?" 월간 <대구포켓> 편집장인 캐나다인 크렉 화이트(35)씨의 제안에 무보수 자원봉사 기자인 댄 게이머(23ㆍ영국)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이터 클럽 회원들이 토요일 두류공원 근처 도장을 빌려 합기도, 태권도, 검도 등 구분 없이 대련하는 것을 봤어요. 7일 당장 기사를 송고하겠습니다."

화이트씨의 다음 아이디어는 도심 속 '러브호텔'. "한국인은 러브호텔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외국인에겐 단돈 4만원에 벽걸이 TV에 목욕, 초고속 인터넷까지 즐길 수 있어 정말 좋아요. 일본 도쿄에서 이런 시설을 이용하려면 50만원은 줘야 할 겁니다."

화이트씨의 '러브호텔 예찬'에 마케팅 담당 스코트 맥로프린(28ㆍ미국)씨가 맞장구를 쳤다. "대구가 국제도시가 되려면 인테리어가 굉장히 아름다운 러브호텔을 외국인에게 많이 알려야 해요. 외국인 관점에선 그냥 지나치기에 아까운 명물들이 많아요."

이밖에도 화이트씨의 취재수첩엔 대구 소재 이탈리아 문화센터, 대구 어린이들이 많이 쓰는 사투리와 속어, 외국인 택시 탑승기 등 외국인 눈높이에 맞춘 기사거리가 가득했다.

회의를 마칠 무렵 맥로프린씨가 "9월호 스폰서가 아직 없어 고민"이라는 말을 꺼냈으나, 다들 "우선 8월호부터 돌리고 생각하자"며 거리로 나섰다. 외국인 기자들에게서 <대구포켓> 을 건네 받은 한 쌍의 연인은 신기해 하며 "땡큐"를 외쳤다. 게이머씨는 마침 이곳을 지나던 영국 켄트대학 동기를 만나 사진을 같이 찍기도 했다.

대구에 터잡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매달 대구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무료 잡지를 발간, 대구 토박이 못잖은 '대구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대구포켓> 은 가로 14.8㎝, 세로 21㎝ 크기에 64~68쪽짜리 포켓형. "반으로 접으면 주머니에 쏙 들어가요.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볼 수 있게 한 겁니다."(화이트씨)

크기는 작아도 정보의 양과 깊이는 만만찮다. 교동시장과 동성로, 로데오거리 등 대구의 명소를 교통편과 지도를 곁들여 소개하는 것은 물론, 대구의 음식과 술 문화, 각종 행사, 대구 속 외국인들의 다양한 삶까지 망라하고 있다.

<대구포켓> 을 주도하는 4인방은 화이트, 맥로프린씨, 그리고 대구 토박이 여성 하미영(28), 이유리(27)씨다. 또 영어학원 강사인 게이머씨를 비롯해 대학생, 영어교사 등 45명이 기자와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외국인의 눈높이에서 대구의 이모저모를 활자화하고 있다.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1월 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알고 지내던 화이트씨와 맥로프린씨는 "대구를 제대로 알리는 잡지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전세계 4,000여명의 회원을 둔 한국 소개 사이트 '갈비찜닷컴'(www.galbijim.com)을 운영하고 있는 화이트씨는 오프라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터였다.

화이트씨는 대구에서 평생 동지를 만났다. 2002년 11월 대구 캠프워커에서 군복무 중인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시내 서점에서 지금의 아내 서정옥(35)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혼자 사전을 사러 갔다가 말이 안 통해 손짓, 발짓 하고 있는데 한 천사 같은 여자가 다가와 도와줬어요." 오랜 연애를 거쳐 지난해 9월 결혼한 그는 두 달 후면 아빠가 된다.

그가 대구 알리기에 나선 까닭은 또 있다. "서울과 부산은 이미 국제도시로 탈바꿈해서 외국인이 제대로 한국을 느끼는 데는 뭔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반면 대구에는 오래된 골목과 맛집이 있고 사람들이 약간 보수적이면서 정이 많아 오히려 가슴에 와 닿아요."

두 살 때 미국에 입양된 한국 출신의 맥로프린씨는 "화이트 편집장과 교류하면서 대구의 가치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을 위한 잡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직 부모님을 찾지 못해 안타깝지만 모국의 한 도시를 알리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화이트씨가 취재ㆍ편집, 맥로프린씨가 마케팅을 맡고 알음알음으로 연결된 외국인들이 힘을 보태 올 2월에 창간호를 냈다. 보통 1,000∼2,000부를 찍지만 동성로 축제를 특집기사로 다룬 5월호는 4,000부나 발행했다. 첫 두 달은 각자 주머니를 털어서 제작비를 댔고, 4월호부터는 스폰서를 구해 제작비를 감당하고 있지만 살림은 늘 빠듯하다.

이들은 곧 인터넷 라디오 방송국도 연다. 활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서다. "생생한 대구의 느낌 자체를 목소리에 싣고 싶다"는 것. 화이트씨는 "<대구포켓> 과 인터넷 라디오가 대구시민과 외국인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 부산과 광주, 서울에서도 잡지를 만들고 싶다"며 "대구를 인연으로 대한민국 전체를 알리는데 한 몫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글·사진 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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