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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1류와 4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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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1류와 4류 사이

입력
2009.08.07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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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며칠 전 정치권을 향해 연거푸 펀치를 날렸다. "우리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재계 수장의 정치권 때리기는 갑자기 지난해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2008년 봄, 필자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연수하던 시절 현지에서는 대선후보 프라이머리(예비경선)의 막이 오르고 있었다. 멀리 한국에서는 치열했던 대선이 끝난 직후였다.

거기서 접한 미국인들과 각국의 유학생들은 필자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선거 얘기를 꺼냈다. 그들은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길 것 같으냐"고 묻곤 했다. 종종 양념처럼 한국의 대선 결과에 대해 궁금증을 표시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졌지요." 대답의 골자는 이런 식이었다.

그들은 1987년 직선제가 도입된 뒤 한국에서 여야 간 정권교체가 두 번이나 이뤄졌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다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얼룩진 서울의 거리를 연상했던 그들에게 한국의 정권교체 제도화는 신기한 뉴스였다.

사실 선진국을 제외하고 평화적 정권교체가 뿌리 내린 나라는 별로 없다. 아시아의 두 강대국인 일본과 중국에서도 수십 년 동안 1당 장기집권이 계속돼 왔다. 정권교체만 놓고 보면 한국 정치는 1류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 정치에도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한 나무에도 튼실한 열매와 썩은 열매가 함께 달려 있는 것과 같다. 때문에 정치에 대해 종합 성적표를 매기려면 정권교체뿐 아니라 선거 및 정당 문화, 국회 운영 등을 다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카메라를 국회로 옮기면 4류의 풍경을 접할 수밖에 없다. 여야 의원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몸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격투기를 본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지난 연말 여야가 부딪쳤을 때는 전기톱과 해머, 소방호스까지 총동원됐다.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오죽하면 여의도로 출근하는 국회 직원을 향해 그 가족이 "몸 조심 하세요" 라고 인사하는 경우까지 있었을까. 그래서 많은 해외동포들이 모국에 대해 가장 창피한 것이 '국회 난장판'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과거에 "정치는 4류, 관료 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한 것도 국회 싸움을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 추락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여당과 몸으로 이를 막으려는 야당이 정면 충돌한 데서 비롯됐다.

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는 국회부터 대수술 해야 한다. 기싸움을 벌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여당의 날치기 시도와 야당의 물리적 저지가 반복되는 구조를 확 바꿔야 한다. 지난 연말에는 민주당이 해머 등을 동원해 극렬하게 싸웠지만 17대 국회 때는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전기톱까지 쓰면서 결사항전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여야가 서로 '네 탓이 먼저'라면서 책임을 돌린다면 블랙코미디가 될 수밖에 없다.

새 출발을 위해서는 여야가 신사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여당은 안건 강행 처리를 하지 않고, 야당은 물리적 저지를 하지 않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하는 것이다. 여당에선 "야당이 끝까지 제동을 걸면 방법이 없다"고 불만을 터트릴 수 있다. 하지만 날치기 퇴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날치기를 한 번도 하지 않고 의장 임기를 마친 사례도 있다. 국민의 마음은 신사협정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참는 쪽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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