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도 도시의 정서라는 게 있다. 물론 구성원의 취향이나 종사하는 일, 인근 도시와의 연계성 등등이 합쳐져 만들어낸 것일 거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을 직접 겪지 않더라도 도시의 첫인상이라는 것이 있고 한 바퀴 둘러보면 그 도시가 느껴진다. 도시는 생명체처럼 살아 있다. 얼마 전 지방의 소도시 두 곳을 다녀왔다. 두 곳의 분위기는 영 딴판이었다. 서울에서 한참 떨어진 A시를 걷다가 한 병원의 간판을 보았다.
학문외과. 서울에서는 곧잘 보던 간판이지만 왠지 농담이라고는 도통 하지 않을 것 같은 그곳에서 만나니 색달랐다. 위트라기보다는 체통을 중요시하는 그곳의 정서에 딱 부합하는 단어란 생각은 나중에 들었다. W시의 터미널 앞에서 또 다른 간판을 보았다. 이번엔 '창문외과'였다.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이고 서울의 한 대학 지방 캠퍼스가 있는 이곳은 좀 다른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늘 보던 '학문'보다 신선했고 잠깐 그곳에 창문이 달리는 엉뚱한 상상도 했다. 괜히 병원 의사도 젊은 사람일 것 같았다. 그런데 항문이라는 단어가 '학문'과 '창문'처럼 전혀 다른 두 도시 다 입에 올리기 껄끄러운 말인가 의아스러웠다. 며칠 전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현행의료법에 의하면 간판에 적을 수 있는 진료과목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다. 항문외과처럼 특수전문과목은 쓸 수 없는 것이다.
소설가 하성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