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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열전! 추억 속으로] 1회 우승 경북고 출신 이선희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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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열전! 추억 속으로] 1회 우승 경북고 출신 이선희 코치

입력
2009.08.06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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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심의 '플레이 볼' 외침에 운동장은 통째로 날아갈 듯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옆 사람과 신경전을 벌이다가도 역전홈런이 나오면 서로 얼싸안았다. 봉황대기 기간 야구장은 축제의 한 마당이었다.

아마 시절엔 '일본 킬러' 왼손투수로 명성을 날렸던, 1982년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 결승전에서는 '비운의 투수'로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이선희(54) 프로야구 삼성 스카우트 코치.

그는 제39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한창인 요즘 감회가 남다르다. 이 코치는 경북고 2학년 때인 1971년 1회 대회 때 참가해 1년 선배 남우식 정현발 등과 함께 우승을 일궜다.

현재 삼성 스카우트 코치로 활동 중인 이 코치는 봉황대기 기간 수원구장에서 살고 있다. 이 코치는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밤 10시에 퇴근한다. 30도가 넘는 뙤약볕에서 우산을 양산 삼은 채 관중석을 떠나지 않는다.

투수 출신인 그는 주로 투수 선발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관중석을 벗어날 수 없다. 운동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 최대한 정확하게 선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련한 봉황의 추억

1회 대회 때 우승기를 휘날렸던 이 코치는 고3이던 2회 대회 때는 첫판에 쓴잔을 마셨다. 이 코치의 경북고는 1회전에서 강호 부산고와 붙었다. 경북고가 1점을 뒤진 9회말 2사 만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 코치는 상대 왼손투수 편기철에게 삼진을 당했고,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경기 후 서영무(작고) 경북고 감독은 "죽더라도 방망이를 휘둘러 봐야지 쳐다보다 삼진을 먹는 게 말이 되냐"며 이 코치를 호되게 나무랐다. "그땐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죠. 감독님께 그런 꾸지람을 듣기는 처음이었으니까요." 이 코치는 지금도 37년 전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 입장식 준비만 1주일

70년대만 해도 고교야구 전국대회, 특히 전국의 모든 팀이 참가하는 봉황대기 기간엔 온 나라가 들썩였다. 암표상은 기본이었고, 표를 구하기 위해 동대문구장에서 인근 평화시장까지 300m가 넘게 줄이 이어졌다.

"요즘은 없어졌지만 예전에만 해도 봉황대기 입장식이 있었는데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적어도 개막 1주일 전부터 학교에서 입장식 연습을 했어요. 입장식상도 있었으니 학교간 경쟁이 대단했죠."

■ 봉황은 내 성장의 동력

사실 이 코치는 고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선수였다. 체격도 왜소한 데다 발까지 느렸던 탓에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한 번은 학교에서 이 코치의 아버지를 교무실로 호출했다. 학교에서는 "우리 학교 같은 명문을 다니기엔 (이)선희의 실력이 모자라니 야구를 그만두든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라"고 통보했다.

"다른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가 유니폼만 입게 해주십시오." 이 코치의 아버지는 눈물로 호소했다.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왜 야구를 했을까' 하는 후회로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그때부터 이 악물고 야구했고, 봉황대기를 거치면서 투수로 가능성을 인정 받게 됐어요."

가정형편 때문에 이 코치는 경북고 졸업 후 대학 대신 농협을 택했다. 이 코치는 같은 왼손투수 출신인 김성근 감독(현 SK 감독)이 있던 기업은행에 가고 싶었지만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지침을 어길 수 없었다. 이 코치는 이미 농협과 이야기가 끝난 상태였다. '농협 대표'였던 이 코치는 만 19세이던 1974년엔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 학생야구로 제2의 인생

한화(전신 빙그레 포함)와 삼성에서 20년간 투수코치를 지냈던 이 코치는 지난해부터 스카우트로 자리를 옮겼다. 50대 중반의 나이지만 스카우트로는 '신참'이다. '신참' 이 코치는 10년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질문하고 배운다.

"투수코치를 할 때는 '프로의 틀'에서 선수를 봤는데 지금은 '학생야구의 틀'로 선수를 보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선수들이 성에 차지 않아서 고민도 많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크게 달라졌어요." 이 코치는 학생야구를 통해 야구를 새롭게 배우게 됐다고 했다.

"언젠가는 프로야구 현장으로 되돌아가겠죠. 그런 날이 오면 지금 이 시간들이 큰 힘이 되지 않겠습니까? 좋은 공부, 잘하고 있습니다." 이 코치의 입가에 중년의 무게가 느껴지는 여유로운 미소가 흘렀다.

수원=오대근 기자 inlin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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