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유한성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시인들의 중요한 시적 주제였다. 가령 육체성에 대한 놀라운 투시력을 시적 자산으로 삼아온 김기택(52) 시인은 "시는 상상력을 통해 보이지 않는 몸을 허구적으로 확장시키고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삶의 조건들을 허구적으로 변형시켜 우주와 영원과 죽음을 넘어서는 자유를 몸으로 체험시킨다"고 통찰하기도 했다.
신영배(37)씨의 두번째 시집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길어진다> (문학과 지성사 발행)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그림자'다. 김기택 시인의 표현을 변용하자면 신씨에게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몸이다. 오후>
시집에는 그림자 놀이의 정경이 반복적으로 그려진다. 태양의 고도에 따라 변형되는 그림자는 현실에 갇힌 몸을 해방시키려는 꿈틀거리는 욕망의 투영물이다.
'쪼그려 앉아 바닥에 비친 내 그림자를 따라 그린다 / 오후 두 시 머리가 잘린 새 // 팔을 펴 들고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그린다 / 오후 네 시 날개를 그리다 // 빌딩 모서리에 걸린 어깨를 그린다 / 오후 여섯 시 깃털을 그리다 // 톡톡톡 걷는 발바닥을 그리다 / 벗은 구두 // 나를 데리러 온 바람을 그리다 / 옥상 난간에서'('그림자 날다' 전문)
'봄의 옥상'에서 전개되는 상상력도 비슷하다. 신씨는 자신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그네를 타는 소녀, 소녀의 그림자와 새의 이미지를 중첩시킨다. '…동그란 무릎이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 흰 깃털이 앞으로 날렸다 뒤로 날렸다 // 그가 떠나고 그의 그림자가 나중에 떠났다'.
이 같은 맥락에서 신씨에게 눈에 보이는 몸은 본질을 담아내지 못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림자와 함께 시집을 가득 채우는 것은 변형된 육체_기형의 이미지들이다.
그것은 머리를 지운 아이들(표제작), 화분 속에 깨진 아이('팔월의 점'), 가슴에 붙어 있는 혀가 빠져나간 입('불타는 그네'), 치마 속에서 나오는 머리('모빌')처럼 기괴하다. 시인은 지워지고, 비틀려지고, 잘린 '기형의 육체'를 통해 존재의 이면_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세상에 쓰여지지 않은 것을 쓰겠다는 의지가 내 시의 원동력"이라는 신씨는 "그림자 끝에 매달린 머리를 붙잡으려는 행위와 같이 헛된 노력이라 해도 그것은 나를 설레게 한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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