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전격적인 만남을 가짐에 따라 두 전ㆍ현직 정상의 회동내용이 초미의 관심사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행 미션은 북한에 억류된 미국의 두 여기자의 석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더욱이 대통령 특사가 아닌 개인자격의 평양방문이다. 이와 관련,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두 여기자의 석방시키기 위한 순전히 개인적인 임무가 수행되는 동안에는 노 코멘트"라고 말했다. 하지만 긴장국면의 북미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비춰 부여된 임무 이상의 대화와 협의가 오갔을 것으로 관측된다.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이 "북미간 공동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해 폭넓은 의견교환을 했다"고 보도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회동내용이 예우차원(여기자 석방)에 머무느냐, 아니면 예우를 뛰어넘는 결과(북핵 및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일정한 의견접근 또는 합의)를 도출해내느냐 이다. 아울러 클린턴 전 대통령이 의제설정 및 합의도출과 관련,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재량권을 받아왔느냐는 것도 평양 방문의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일단 미 정부가 정치 문제를 배제한 개인 방문임을 애써 강조하는 만큼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역할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 전달 여부를 놓고 북한의 발표와 미국의 부인 등 혼선이 빚어진 것도 일정한 한계가 그어진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역할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식통들은 최소한 오바마 대통령의 간단한 안부 인사 등이 김 위원장에 건네졌을 가능성은 높다고 관측했다.
이런 맥락에서 1994년 방북했던 카터 전 대통령이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에서 도출한 결과에 비견되는 성과를 얻어내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카터 전 대통령은 당시 북핵 위기 해소 임무를 띠고 방북, 북미 제네바 합의의 초석을 놓았다. 뉴욕타임스도 이날 "클린턴 전 대통령이 관계개선의 시동을 걸 수 있는 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사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인 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영변 핵 시설에 대한 폭격을 추진했으며, 미 행정부의 강경기류와 궤를 달리한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협상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부시 행정부 때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국장을 지낸 빅터 차 조지타운 대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지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엄청난 아이러니"라고 놀라워했다.
이번 회동은 98년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로 급랭관계였다가 2000년 12월 정상회담 성사 직전 단계까지 갈 정도로 반전을 겪은 두 사람이 마침내 회동을 이뤘다는 점에서도 이채롭다.
황유석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