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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여름방학 단상(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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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여름방학 단상(斷想)

입력
2009.08.0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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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아 일시 귀국한 조기유학 어린이들 가운데 스트레스로 인한 병증 때문에 정신과치료를 받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는 최근 뉴스가 2년여 전의 착잡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우리 가족이 미국 뉴욕 맨해튼 근교에 거주하던 때의 얘기다.

조기유학을 두고 '시험 없는 자유'니 '입시교육으로부터의 해방'이니 하는 말들도 없지 않지만,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를 둔 우리 가족에겐 먼 얘기였다. 자유나 해방은커녕 아이가 현지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 만으로도 적잖이 진땀을 흘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쯤엔 아이도 이미 2년 넘게 미국에 체류한 상태였고, 영어도 그럭저럭 수업을 받을 정도는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말의 뉘앙스를 놓쳐 선생님의 지시나 가르침을 놓치기 일쑤여서 늘 학업에 참견을 해야 했다.

숙제도 쉽지 않았다. 특히 작문숙제는 숙제를 하는 아이나, 그걸 돕겠다고 나섰던 아내나 그야말로 진창 속을 행군하듯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문숙제라는 게 '일기를 디테일(detailㆍ세부)을 최대한 살려 최소 15개 이상의 문장으로 쓰되, 일기 전체에서 형용사와 부사를 각각 최소 5번 이상 활용하라'는 식이었다. 대학에서 이과를 전공한 아내는 한 바탕 씨름을 하고 나면 "이건 아냐, 차라리 애한테 이차방정식을 가르치는 게 쉽겠어"라며 혀를 내두르곤 했다.

우리 아이가 '새로 온 한국 아이'라고 소개한 소년을 알게 된 것은 우리 가족이 아이 뒷바라지에 지쳐 서서히 '진창에서 빠져 나갈 날'을 기다리기 시작하던 바로 그 즈음이었다. 소년네는 엄마와 아이가 단 둘이 조기유학을 떠난 '기러기 가족'이며, 1년여 전 1차로 한국에서 우리가 살던 타운 인근의 도심 학교로 전학했다가 학군을 좇아 2차 전학을 한 케이스라고 했다.

그런데 소년에게서 심상찮은 기색이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놀러 온 소년은 왠지 야윈 느낌을 줬고 한 눈에도 피곤해 보였다.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며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고, 어떤 땐 말을 건네도 마치 혼자만의 깊은 세계에 빠져있는 것처럼 전혀 무심했다. 별 일 아닌데 지나치게 킥킥거렸고, 눈치를 보며 뭔가를 안으로 삭이느라 진땀을 흘리는 듯도 했다.

그 후 소년은 두어 번인가 더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가끔 혼자서 터벅터벅 타운 어귀를 걸어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는 동안 소년의 영어가 일상적 대화조차 어려울 만큼 뒤처져 교실의 외톨이가 됐다는 얘기며, 현지 분위기에 어두운 소년의 엄마도 대처는커녕 그런 상황조차 제대로 모르는 것 같더라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 해 늦가을쯤 소년은 결국 '좀 더 좋은 사립학교'로 다시 한 번 전학해 타운을 떠났다. 하지만 들짐승처럼 야윈 소년의 뒷모습은 말조차 통하지 않는 낯 선 세계에 던져진 채 무서운 고독과 싸우느라 후들거렸던 어린 영혼의 잔영으로 나의 뇌리에 각인됐다.

올해도 여름방학을 맞아 수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공부'를 위해 나라 안팎을 바삐 오가는 모습이다. 단기 영어연수 등을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학생들도 있고, 국내 학원에서 '입시영어'를 배우기 위해 해외에서 거꾸로 귀국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걸 두고 함부로 옳고 그름을 논할 순 없는 일이지만, 어린이 조기유학은 보다 신중히 계획할 필요가 크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장인철 피플팀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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