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고와 모략은 동서고금을 관통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권세와 부, 입신양명을 위해 남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행위는 끊이지 않았다. 권력이 교체되고 역사의 물줄기가 바뀔 때마다 권모술수와 중상모략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됐다. 무고와 모략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도 말로는 좋지 않았다. 무고와 모략은 인간 유전자에 내재된 본능적 행위일지 모른다.
뿌리 깊은 무고와 모략의 역사
고대 사회에서도 무고와 모략의 폐악은 심각했다. 기원전 11~기원전 7세기 주(周)나라 초부터 춘추(春秋)시대 초기까지의 민요를 모은 중국 최고(最古) 시집 시경(詩經)에 이런 구절이 있다.'참소(讒訴ㆍ남을 헐뜯어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일러 바침)하는 사람이 한이 없어 나라를 어지럽히네…저 참소하는 사람을 잡아 승냥이, 호랑이에게 던져라. 그들이 먹기 싫다 하면 불모지에 버리고, 불모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불구덩이에 집어 넣어라.'무고와 모략을 근절하려던 고대인들의 고민의 단면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반대로 무고와 모략을 출세의 방편으로 기술한 '처세서'도 있었다.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의 혹리(酷吏) 내준신(來俊臣)은 <나직경(羅織經)> 에 출세에 필요한 모략과 권모술수를 적었다. '공을 죄라 하면 그의 뿌리를 뽑는 데 가장 효과적이고, 황당한 이야기를 꾸며내 그의 말이라고 모함하면 그에 대한 다른 사람의 혐오를 늘릴 수 있다(其功反罪 彌消其根 其言設繆 益增人厭),' '군주가 계책으로 신하를 다스리지 않으면 때로 다스릴 수 없고, 수하가 계책으로 군주를 대하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으며, 관료가 계책으로 동료를 대하지 않으면 적수를 제거할 수 없다(上不謨臣 不或不治 下不謀上 其身難 臣不謀僚 敵者勿去),' 구절 하나 하나가 요즘 세태에 대입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다. 나직경(羅織經)>
누군가의 부정이나 비리를 고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의 기본이자 권리다. 적절한 상호 감시와 견제는 우리 사회의 도덕률을 유지시켜주고, 그를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이익도 보호한다. 그런 점에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 받은 고위 공직자들은 더 엄격한 감시와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법적, 도덕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는 사람이 고위 공직에 오르면 쉽게 권력의 단맛에 빠져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일신의 영달만 좇을 가능성이 높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사회의 몫이다.
따라서 고위 공직에 오르려는 이들이 연루된 부정과 비리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관련 기관에 알려 철저한 검증을 거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고위 공직에 오르려거나, 오른 사람들이 바른 몸가짐으로 자신과 주변을 철저히 관리하려 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부정, 비리 고발도 공익 목적이 아니라면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없는 일을 지어내거나 사실관계를 왜곡ㆍ과장해 상처를 입히고 흠집을 내는 것은 범법 행위다. 한 후보자의 낙마와 경쟁 후보자의 발탁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이 익명의 그늘에 숨어 퍼뜨리는 음해와 비방마저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검찰총장도 모함하는 공직 사회
청와대 인사 검증 과정에서 악성 루머와 비방으로 마음의 상처가 컸다는 김준규 검찰총장 내정자의 언급은 모함성 밀고와 허위 투서의 적폐가 공직 사회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위장 전입, 부당 배우자 공제처럼 팩트를 갖춘 고발이 우선했다면 김 내정자 인사 검증의 양상은 달랐을 지 모른다.
그러나 요트, 승마, 미스코리아 문제처럼 저급한 루머와 비방으로 흠집부터 내려 함으로써 인사 검증 관련 고발의 공익성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다.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 검증 과정이 이 정도니 일반 공직 사회의 무고와 모략이 오죽할까 싶다.
공직 사회에서 <나직경> 의 구절처럼 무고와 모략을 처세의 전략으로 삼는 이들은 사라지고, 대신 시경구절을 올바른 처세의 경구(警句)로 삼는 공직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게 제대로 된 공직 사회다. 나직경>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