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4일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여기자 2명의 석방 교섭을 위해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특히 그는 이날 오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15년 만에 면담함으로써 북미관계 개선의 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 정오 뉴스를 통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일행이 4일 비행기로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특별기를 타고 미국 워싱턴을 출발, 이날 오전 10시48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공항 도착 현장에는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이 영접을 나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후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다. 북한 평양방송은 "(두 사람은) 공동 관심사에 대해 폭 넓은 의견 교환을 했다"며 "(클린턴 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정중히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평양방송은 김 위원장이 이에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면담 자리에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배석했다.
두 사람의 면담에서는 지난 3월17일 북중 국경에서 체포돼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 여기자 유나 리, 로라 링씨 석방 문제 외에도 북핵 문제를 비롯한 북미 양자 현안이 포괄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측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전제 조건으로 여기자 석방 약속과 함께 김 위원장 면담을 내걸었다"며 "북한이 이를 수용해 방북이 성사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 6월 미국인 여기자 2명에 대해 비법국경출입죄, 조선민족적대죄를 적용해 노동교화형 12년형에 처했고 미국은 여기자 석방을 위해 북한과 물밑 교섭을 진행해왔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면담함으로써 1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4월)와 2차 핵실험(5월) 등으로 한반도 주변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북미관계 전환의 전기가 마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방북 때에는 1차 북핵 위기가 대화와 협상 국면으로 전환된 전례도 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개인 자격으로 방북했다면서 인도주의 현안과 정치 대화를 분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르면 5일 석방되는 여기자들과 함께 미국 워싱턴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 백악관 '메시지 전달' 부인
한편 로버트 기브스 미 백악관 대변인은 "두 여기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개인적인 임무가 수행되는 동안에는 언급을 피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오바마 대통령 구두 언급 전달 여부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다"며 부인했다.
정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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