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詩로 여는 아침] The Last Train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詩로 여는 아침] The Last Train

입력
2009.08.05 06:45
0 0

저무는 역두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흐터져 있고

병든 역사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죽도

누굴 기둘러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노하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1930년대, 청춘과의 결별은 이렇게 추억된다. 저무는 역두에서 떠나보낸 1930년대의 청춘. 청춘은 못쓰는 차표와 같고 역두에 청춘을 버려두고 화물차는 병든 역사만을 싣고 떠났다. 오장환은 1930년대, 식민지에서 청춘을 떠나보낸 풍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그리고 징글징글 맞았을 청춘의 끝에서 오장환이라는 한 식민지 청년이 형제처럼 느낀 존재는 다름 아닌 카인. 동생을 죽인 인류 최초의 형제 살인자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구약 속의 이 인물에게 그는 왜 친근함을 느꼈을까, 바로 징글징글 맞았던 청춘 때문은 아니었을까?

청춘을 보내면서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못할 짓을 해보지 않은 분들, 드물 것이다. 더구나 식민지에서 보낸 청춘은 얼마나 많은 오열과 모욕을 짊어졌을까.

그리고 거북. 그 등에 새겨진 지도,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새겨진 등을 가진 거북에게 식민지 청년 시인 오장환은 말한다.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라고. 거북의 등에 새겨진 슬픔 노선. 고독한, 아득한 그리고 아름다움의 치통을 실은 청춘, 잘가라.

허수경ㆍ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