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심장마비로 숨진 조오련(57)씨는 쉼 없는 도전으로 거친 삶의 물길을 헤쳐온 '수영계의 영웅'이었다. 50여개의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운 선수 시절은 물론, 은퇴 후에는 대한해협 횡단에 나서는 등 평생 '남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조씨는 호적상이 아닌 실제 나이로 환갑이 되는 2010년에 또 다른 도전에 나설 참이었다.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을 기념하는 해협 재횡단이 그것이다. 그는 최근까지 제주도 애월읍에 캠프를 차리고 체력훈련을 해왔다. 그러나 "수영 인생을 여기서 마무리한다는 각오로 온 몸을 던지겠다"던 고인의 마지막 도전은 아쉽게도 '미완의 꿈'으로 남게 됐다.
조씨가 처음 수영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69년 6월 열린 전국체전 예선전. 수영복도 없이 사각팬티만 입은 채 참가한 그는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1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해남고 1학년 때인 68년 말 자퇴서를 내고 무작정 상경해 구두닦이 등으로 일하며 YMCA 수영장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그가 한국 수영의 중심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그 후 양정고에 스카우트돼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아시아 최고의 수영선수로 성장했다.
그는 70년 방콕 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우승, 2관왕에 올랐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수영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는 '아시아의 물개'란 애칭을 안겨줬다. 이어 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같은 종목 2연패를 달성했으며, 78년 은퇴 때까지 배영 100m와 평영 100m, 200m 세 종목을 제외한 모든 종목에서 50여개의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은퇴 후에는 바닷길 개척에 나섰다. 80년 8월11일 부산 다대포에서 일본 쓰시마섬까지 대한해협을 13시간16분 만에 헤엄쳐 건넜고, 82년에는 9시간35분 만에 도버해협을 횡단했다.
이후 사고와 사업실패로 낙담하던 조씨는 89년부터 '조오련 수영교실'을 운영하며 수영인으로 재기했다. 광복 60주년인 2005년에는 두 아들 성웅(28), 성모(24)씨와 함께 울릉도- 독도를 횡단하고, 지난해에는 혼자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한편 조씨는 대한해협 재횡단 도전 1년을 앞두고 후원자를 구하지 못해 고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혼자 과음을 하기도 했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장남 성웅씨는 "어제(3일) 통화에서 아버지가 '내년 횡단 도전 때 네가 옆에서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목소리도 밝고 기분도 좋으셨다"면서 "스폰서 고민으로 술을 자주 마셨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허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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