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 어떻게 이 세계를 창조하였는지를 알고 싶다. 이런저런 현상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신의 생각을 알고 싶은 것이다. 나머지는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알버트 아인슈타인)
인간은 우주의 일부다. 이 명제의 의미를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한 태초의 시간부터,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려고 발버둥쳐왔다. 숱한 논리와 설명이 태어났다. 신화와 종교가 우주의 시작을 얘기하고, 철학과 예술이 우주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나 인류가 수학이라는 언어, 그리고 관측이라는 방법론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어떤 설명도 객관성ㆍ보편성을 갖지 못했다. 인간은 이성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이 '이해의 틀'에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에서는 과학의 의미가 물질적 활용의 측면 곧 응용 기술에 국한돼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도구적 목적 없이 순수하게 '신의 생각'에 다가서려는 과학의 존재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인간 스스로를 포함한 우주 전체에 대한 의미를 혁명적으로 바꿔왔다. 17세기 고전역학의 태동 이후 그 혁명은 가속을 거듭하며 진행 중이다.
과학의 물음,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엘러건트 유니버스> (1999)는 우주의 아득한 비밀의 심연을 향해 가는 과학의 한 측면을 흥미롭게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이론은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다. 초끈이론은 우주에 존재하는 네 가지 기본 힘(강력, 전자기력, 약력, 중력)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매개입자들을 '끈'이라는 최소 단위로 통합하려는 시도다. 이론물리학에서는 이런 통합 시도를 대통일이론(Grand Unified Theory) 또는 궁극이론(Theory of Everything)이라 부른다. 엘러건트>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초끈이론의 구조를 학문적으로 정교하게 기술하는 데 있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1988) 이후 최고의 과학 교양서로 자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 브라이언 그린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학자지만, 그는 연구 업적보다 저술 활동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천재적인 비유 능력을 십분 발휘해 복잡한 고등 수학의 언어에 갇힌 우주의 비밀을 대중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번역해 들려준다. 시간의>
번역자인 박병철 박사는 "물리학의 역사는 우주를 설명하는 여러 차원의 이론을 통일해가는 역사"라고 말하며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현상과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현상을 하나로 통일한 뉴턴을 예로 들었다. "중력이라는 하나의 틀로 전혀 다른 차원의 두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물리학자들은 '아름다움'과 '희열'을 느끼는데 브라이언 그린의 탁월함은 수학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도 그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다.
500여쪽(한글 번역본)에 이르는 <엘러건트 유니버스> 는 5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3분의 1 가량이 초끈이론 이전까지의 이론물리학 궤적을 설명하는 일종의 서론이다. 20세기 중반 이전에 논의가 완료된 이론들이지만, 여전히 이해하기(정확히 말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상대론과 양자역학의 내용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인류가 수백만년 동안 경험으로 축적한 삼라만상에 대한 인식과 큰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엘러건트>
브라이언 그린은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가 무뚝뚝한 수학으로 기술한 이론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번역해 냈다. 가속운동의 휘어진 시공간을 설명하기 위해 놀이공원의 회전판을 그려놓고, 광전효과를 묘사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이 가득 갇힌 여관을 등장시킨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 독자들을 현대 물리학의 세계로 이끌어 놓고 이 두 이론이 "정면충돌하고 말았다"고 결론짓는다.
브라인언 그린은 이 세기적 충돌의 여파를 이렇게 묘사한다. "연구대상을 큰 영역에 한정해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아무런 문제 없이 활용하고 있는 행복한 물리학자가 있는 반면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을 어떻게든 하나로 통일시켜 궁극적 이해를 도모하는 학자들도 있다." 브라이언 그린은 후자의 입장에서 '초끈이론'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기술한다.
초끈이론, 궁극의 세계를 향한 인간의 로망
초끈이론은 모든 힘과 물성(stuff)이 끈이라는 단 하나의 근원으로 이뤄져 있다는 생각이다. 모든 끈은 완전하게 동逑?존재이며 서로 다른 패턴의 진동에 의해 각각 다른 힘 또는 물성으로 현현된다는 것이 이론의 핵심이다. 마치 바이올린의 현처럼 고유의 진동수를 갖는 1차원의 존재가 우주를 구성한다는 것인데 학자들은 이 기술이 만물의 본질을 통일적으로 설명할 궁극 이론의 후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초끈이론은 탄생한 지 20년이 넘게 단 한 번도 실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론이다. 어쩌면 영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전체 우주와 거의 형이상학적 사고에서만 존재하는 극미 세계를 꿰뚫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이 초끈이론에 매달리는 것은 이것이 인간의 인식이 도달한 모든 것을 통일할 유일한 후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초끈이론이란 '도대체 우주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현 시점의 인간이 지닌 유일한 열쇠인 것이다.
브라이언 그린은 그 막막함 혹은 로망을 이렇게 얘기한다. "은하계의 한쪽 구석에서 평범한 별의 주위를 하릴없이 공전하고 있는, 별 볼 일 없는 행성의 생명체들이 그들의 생각과 실험을 통하여 물리적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고 이해했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별 볼 일 없는 행성의 물리학자들은 이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가장 심오한 원리를 규명해낼 때까지 결코 만족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 빅뱅·평행우주·카오스우주론… 우주 비밀은 여전히 수수께끼
인간은 우주의 비밀을 얼마나 풀었을까. 초끈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11차원으로 구성돼 있다. 시공구조를 11차원까지 확장해야 지금껏 밝혀진 우주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류는 아직 아인슈타인이 한 세기 전에 증명한 4차원의 시공간도 이해하지 못한다. 일상의 인식범위를 떠나 우주의 시원으로 향해 가고 있는 과학의 성취 혹은 물리학의 논점들을 소개한다.
▦ 빅뱅
인간이 계산해 낸 우주의 나이는 대략 137억년이다. 20세기 초 에드윈 허블이 은하를 관측하다가 모든 은하가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 팽창을 거꾸로 돌려 계산해보니 137억년 전에는 우주가 한 점에 무한대의 밀도로 모여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것이 폭발(빅뱅)해 현재의 우주의 형태로 흩어졌다는 것이 현재의 표준 이론이다. 이 이론은 관측된 여러 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근원적 질문으로 남아 있다. 빅뱅 전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왜 빅뱅이라는 형태로 우주가 시작됐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 평행우주
다중우주라고도 불리는 평행우주에 대한 개념은 양자역학에서 파생됐다. 양자적 차원에서 입자는 파동성을 지니는데, 이는 어떤 존재가 한 곳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관점을 우주 공간에서 확대해 생각하면 나와 똑 같은 존재, 우리 은하와 똑 같은 은하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도 확률적으로 가능하다. 빅뱅 순간의 우주는 양자역학의 미시적 세계이기 때문에, 우주가 처음부터 갈라져 존재했다는 것은 수학적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설명이다.
▦카오스우주론
우주가 잘 직조된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상태가 복합적으로 뒤섞여 있는 카오스상태에서 시작됐다는 관점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시공계는 아주 '우연하게' 그렇게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우주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복제하며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상호기자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 '우주의 구조'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 (2005)는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상(번역 박병철)을 수상했다. 이 책에서 그린은 현대물리학의 오랜 수수께끼인 '시공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의 목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뉴턴에서 시작해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첨단 끈이론인 'M-이론'이 미시적 세계부터 블랙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핀 책이다. 우주의>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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