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 선생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를 20년 만에 다시 읽었다. 책장도 누렇고 구입 날짜를 적은 볼펜 색도 바랬다. 한때 우리는 제목이 보이도록 그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고 치킨집 한쪽에 앉아 읽은 표를 내느라 열을 올리곤 했다. 완독하기 어려운 책이었는데 다시 펼쳐 읽어보니 새록새록 흥미롭다. 읽기 까다로운 책이라면 덮어두었다 다시 도전하라던 충고가 맞는 것도 같다. 선생의 소설은 눈으로 읽기보다는 입으로 소리내 읽어야 한다.
예닐곱 줄이나 되는 한 문장이 막힘 없이 가락을 타고 물처럼 흐른다. 그때도 낭독회가 있었을까. 이제 책 속에서만 독자와 작가가 만나던 시절은 갔다. 작가는 직접 독자들을 만나 자신의 책을 읽어준다. 낭독 문화가 우리보다 훨씬 앞선 독일에서였다. 백화점의 한 코너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댔다. 세일이라도 하는 건가 머리를 들이밀었는데 한 남자가 선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젊은 작가의 신작 발표회였다. 대형 건물 앞을 지날 때였다.
별 장식도 없고 상품도 진열되지 않은 쇼윈도가 눈길을 끌었다. 광고 효과가 큰 길가 쇼윈도를 저렇게 비워두다니 역시 독일답다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쇼윈도 앞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흰머리가 희끗한 여자 작가가 쇼윈도 안에 앉아 책을 읽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둔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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