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북한 방문은 정부와 언론이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극비리에 진행됐다.
정부는 4일 오전 9시께 방북 소식이 전해지자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종주 통일부 부대변인은 방북 보도가 나온 직후 브리핑에서 "방북에 대해 특별히 언급할만한 게 없으며 현 시점에서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방북 소식이 알려졌음에도 정부 공식 입장을 내놓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한 당국자는 통화에서 "전혀 모르는 이야기"라고 말했고, 북핵 문제에 정통한 당국자도 "아는 게 없다"고 언급했다.
청와대는 전날인 3일 미측으로부터 사전 통보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공식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미측 인사의 방북을 한국 정부가 확인해주는 게 외교 관행에 맞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정황으로 미뤄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정부의 극소수 고위당국자들만 인지한 가운데 전광석화처럼 진행된 듯하다.
그간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북한의 여기자 억류에 대해 관심과 노력을 해온 것을 비춰 볼 때 미 고위인사의 방북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힐러리 장관이 지난달 20일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여기자 석방에 대해 "매우 희망적"이라고 언급한 후 외교가에서 미 고위인사의 방북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그때부터 오바마 미 행정부 안팎에서는 북한이 미측의 사과 및 재발방지 표명, 법체계 인정 및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의 특사 파견 등을 요구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따라서 이날 방북은 뉴욕채널을 통한 북미 접촉에서 가닥을 잡은 뒤 지난 주말 전격 결정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방북에 와병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이날 "김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18일 서울세계도시 기후 정상회의를 위해 방한한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만찬에서 '카터 전 대통령처럼 당신이 적극 나설 때'라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경로 역시 예상을 벗어났다. 그는 방북을 위한 기착지로 예상됐던 한국이나 중국 등을 거치지 않고 캄차카 항로를 이용, 평양으로 직행했다. 전문가들은 미측의 직항로 선택은 이번 방북이 여기자 석방이라는 북미 현안에만 국한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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