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브랜드 이름은 'LIE SANG BONG'이다. 영문 이름의 성을 LEE대신에 LIE로 만들어 남들과 다르기를 원했던 나는 유독 가수들과의 관계가 많은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퍼포먼스와 쇼적인 무대가 디자이너 이상봉의 트레이드마크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나는 지금까지 드라마틱한 컬렉션을 선호해 왔다.
아티스트가 등장하기도 했고, 새도 날려 보았고, 마술도 있었고, 바디페인팅과 홀로그램도 사용했다. 나의 이런 배경에는 내가 패션에 뛰어들기 이전 곱게 접었던 연극사랑에 대한 미련이 아직까지 내 무의식 속에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원인이야 어쨌건 이런 나의 스타일 때문에 내 손에 길들여진 의상들도 나를 닮았는지 다행스럽게도 무대와 궁합이 잘 맞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지금껏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이효리, 옥주현, 양파, JK타이거, 클론, 베이비복스 심은진 등 무대에 오르는 많은 가수들의 옷들을 해주게 되었다. 그리고 많은 가수들이 기꺼이 내 패션쇼 무대에서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가수들 가운데 내가 사랑하는 세 명의 여자가수가 있다. 가창력과 각자의 뚜렷한 개성으로 빛나는 그들은 바로 맨발의 디바 이은미, 섹시 디바 박미경, 그리고 한국의 휘트니 휴스턴이라 불리는 신효범이다.
이 세 사람은 나이도 거의 같고 다들 모델을 빰치는 늘씬한 키와 체격을 갖췄으며, 데뷔시기도 80년대 중후반으로 비슷하다. 모두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가창력만큼이나 자기 색깔도 확실히 가지고 있다.
박미경은 '이브의 경고', '이유 같지 않은 이유' 등에서 폭발적인 가창력과 댄스를 과시했고, '애인 있어요'로 잘 알려진 이은미는 독특한 음색을 보여줬으며, '슬플 땐 화장을 해요'로 잘 알려진 신효범은 터트려주는 독창적인 창법과 자연스런 감정의 발라드로 인정을 받고 있다.
최근 가수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의 사이클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들이 데뷔 20년이 넘은 지금도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무대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세 명 중 나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은 신효범이다. 1999년 경복궁에서 열린 밀레니엄 패션쇼에서 나를 위해 무대에 서주었는데 그때가 개인적으로는 첫 연예인이 등장한 쇼였기 때문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당시 그녀는 모델 못지않게 옷을 소화하면서 관객을 의식하지 않는 당당한 워킹을 보여줘 인상에 남았다. 아마도 가수로서 무대에서 자주 관객을 접했던 것이 도움이 되기도 했겠지만 탤런트들도 막상 패션쇼 무대 위에서는 어색해지기 십상이어서 가냘픈 줄만 알았던 그녀의 당찬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음반시장이 침체돼 어려웠던 시절, 그녀의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이후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 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 때를 떠올렸었다. 신효범은 세 사람의 디바 중 가장 여성스런 스타일로 매력적인 웃음 속에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담겨있다.
요즘 컬렉션 준비로 늦게 잠자리에 들게 되는데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이은미의 다큐를 보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디자이너와 가수로서의 만남이 아닌 음악인으로서의 그녀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무대 위에서 신을 벗고 열창하는 습관 때문에 붙여진 '맨발의 디바' 이은미는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무대를 거침없이 휘젓고 다닌다.
노래에 대한 그녀의 열정을 지켜보며 어떤 길이 진정한 가수로서의 길인지를 느끼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그녀의 라스베가스 콘서트를 위해 의상을 제작해 주었고, 그 이전에도 여러 번 그녀의 무대를 위해 의상을 만들어 주었는데, 큰 키에 어울리는 볼륨과 에너지는 내가 그녀를 위해 옷을 만들면서 떠올리는 그녀의 디자인 콘셉이다.
그래서인지 이은미에게는 매니쉬한 옷들도 잘 어울리지만 드라마틱한 드레스도 멋지게 소화해 내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 볼륨 있는 흰색 셔츠나 재킷 등 남성적인 아이템들이 그녀에게 입혀지면 여성스런 섹시함과 파워풀함을 동시에 전해준다.
마지막으로 가수 박미경은 '섹시한 디바'라 불리는 그녀답게 철저한 몸매 관리로 패션쇼에 선보인 어떤 의상도 잘 소화했는데 특히 과감하고 섹시한 의상은 그녀의 춤과 잘 어울렸다.
매장을 방문한 그녀는 나에게 옷을 골라주는 재미를 주었다고 할 만큼 모든 의상이 그녀와 잘 맞아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그녀도 10년 이상을 거의 이상봉의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가깝게 지냈다.
또한 그녀는 나에게 여러 번 인간적인 감동을 주기도 했다. 예전에 나는 부산에 있는 한 백화점에서 열린 고객과의 만남자??함께 동참해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녀는 행사를 마치고 부산에서 올라오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미국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할 만큼 촉박한 스케줄 가운데서도 내게 한마디 내색도 없이 응해 주었다. 나는 그 사실조차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전해 듣고 새삼 그녀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세 사람이 같이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어느 날 갑자기 이 세 사람들과 각각 전화통화 끝에 자리를 함께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번개모임. 포장마차에서 보기로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홍대 근처의 와인 바에서 만난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날 우리 네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의기투합해 함께 콘서트를 하자는 둥 나름대로 흥겨운 시간을 보냈었다.
'디자이너 이상봉이 사랑하는 디바'. 비록 이 세 사람을 떠올리며 이런 거창한 제목을 붙였지만 제목 이전에 이들과 나의 관계에는 오랫동안 지속된 인간적인 따뜻함이 깔려있다.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과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은 내게 오래된 친구의 감정처럼 끝까지 함께하고 싶은 소중한 사람들로, 또 내 마음속의 영원한 디바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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