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4일 내놓은 중·고교 새 역사교과서 서술 가이드라인(집필 기준)의 골격은 '좌편향 시비 없애기'다. 현행 일부 역사교과서 내용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해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극약 처방 성격이 짙다. 교과서 집필진에게 정부 수립, 한국전쟁 등 쟁점 부분에 대해 구체적인 서술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이념 편향을 해소하자는 취지로 읽혀진다. 그러나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정부 의도에 맞춘 새 역사교과서가 순탄하게 탄생할지는 미지수다.
대한민국 정통성 강조에 방점
2000년에 선보인 현행 역사교과서 집필기준(국사교육 내용 전개 준거안)과 비교해 두드러진 서술 가이드라인의 변화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대폭 강조하고 관련 내용을 크게 보강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지는 민족운동의 역사는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1948년 8월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정통성 있는 국가임을 설명한다'는 등의 가이드라인이 그것이다. 이는 현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는 없는 내용들이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 이전 정부에 대한 묘사도 달라질 전망이다. 현 교육과정은 이승만 정부와 관련,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 획책과 독재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장기 집권으로 독재와 부정부패가 심화되고 이에 따라 국민의 지지 기반이 허물어져 갔음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서술돼 있지만, 새 집필 기준은 '이승만 또는 이승만 정부의 역할 서술 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과 독재화와 관련한 비판적인 점을 모두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며 보다 균형 잡힌 서술을 요구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에 대해서도 '두 차례 헌법개정을 통해 1인 장기집권 체제가 성립되었음을 다룬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때의 독재 정치와 민주화 운동을 서술하면서 그 배경에 대해 설명한다'는 정도로 '균형'을 제시했다.
학계 의견 엇갈려
학계에서는 새 역사교과서 서술 가이드라인을 놓고 이념적 성향에 따라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보수단체 성향인 교과서포럼 관계자는 "현대사 서술에 관한 논란과 시비를 제대로 정리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진보진영 역사학자들과 전국역사교사모임 등은 "새 집필 기준은 사실상 국정교과서를 만들라는 것"이라며 일제히 반발하고 있어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해묵은 이념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역사교사모임 관계자는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서술을 획일화하고 자칫 왜곡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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