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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예술론 '학교 밖서 소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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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예술론 '학교 밖서 소통해요'

입력
2009.08.05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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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자고 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4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강당. 160석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을 향해 황지우 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총장이 말문을 열었다. 지난 5월 한예종에 대한 문화부 감사 결과가 나온 뒤 총장직에서 물러났던 그가 다시 강단에 선 곳은 한예종이 아니라, 그 바깥이다.

아직 재임용 절차를 밟지 못해 교수직을 회복하지 못한 황 전 총장의 수강생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강의 신청을 한, 말 그대로 '아무나'들이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2주 가량 '명작 읽기' 강좌를 진행하는 그는 이날 첫 강의로 '그리스 신화'에 담긴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짚었다.

올해 봄 문화부 감사의 집중 타깃이 됐던 한예종의 이론 담당 교수들이 학교 밖으로 나와 '캠프'를 차렸다. 3일부터 16일까지 '자유예술캠프'라는 이름으로 일반인 대상의 이론 대중강좌를 개설한 것이다.

문화부 감사의 뒷배경이었던 "실기 전문 학교와 맞지 않는 이론 교육" "실력 없는 좌파 교수" 등 보수 일각의 비판에 대해 "직접 와서 강의를 들어보라"는 것이다. 캠프에 참여한 김채현 무용원 교수(무용이론 담당)는 "그동안 한예종이 쌓아온 이론 교육의 성과를 일반인들과 나누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의 강의실 3개를 빌려 여는 자유예술캠프에는 모두 8개의 강좌가 개설됐다. 황 전 총장의 강의 외에도 이동연 전통예술원 교수의 '우리시대 문화의 최전선', 김소영 영상원 교수의 '새로운 자유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김채현 무용원 교수의 '종횡무진 축제난타' 등으로 구성돼 강의당 하루 2시간씩 5~6회 진행된다.

이 캠프는 당초 20여개 강좌로 한예종 캠퍼스 안에서 진행될 계획이었으나, 후임 총장 선거기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학교측이 난색을 표하면서 아예 바깥으로 나오게 됐다.

7월 20일부터 인터넷을 통해 수강 신청을 받았는데, 반응은 예상외로 뜨거웠다. 수강료는 당초 무료로 계획했다가 장소가 외부로 바뀌면서 대관료 때문에 강의당 1만원으로 책정했다. 황 전 총장의 강의는 160명 정원이 사흘 만에 다 찼다.

정원이 40~60명인 나머지 강의도 대부분 정원을 채웠다. '종횡무진 축제난타' 강의를 신청한 김미정(23ㆍ여)씨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캠프에 대해 알게 됐다"며 "한예종이 강의를 한다고 하니 친구까지 설득해서 함께 왔다"고 말했다.

이번 캠프는 문화부 감사로 불거진 이른바 '한예종 사태' 여파로 기획됐지만, 교수들은 강의시간에 정치적 언급은 극히 자제하며 '강의'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개강 첫날인 3일 열린 이동연 교수 강의도 마찬가지였다.

이 교수는 문화이론 전공자가 전통예술원 교수로 재직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문화부의 집중 감사 대상이 됐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날 한예종 사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청년과 노동자의 하위문화를 주제로 수업을 꼬박 채웠고 강의 시간도 정해진 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를 더 넘겼다.

도리어 수강생들이 한예종 교수들을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한예종의 이론교육 확대 운영이 부적절하다는 문화부의 감사 결과에 대해서는 대부분 어이 없다는 반응들이었다.

이 교수 강의에 참석한 KBS 드라마 PD 김영진(49)씨는 "연출 및 드라마 기획을 맡아 일하면서도 항상 문화이론에 대한 갈증을 느껴 참가하게 됐다"며 "기술만 배운다면 예술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백광현(27)씨도 "예술을 감상할 때도 이론을 알면 더 와 닿는데 예술작업을 하는 사람이 이론을 모르고 어떻게 창작을 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현재 '한예종 사태'는 잠시 휴전 상태다. 한예종은 지난달 문화부로부터 이론 교육 시스템을 예술학교 설립 취지에 맞게 개선하고, 통섭교육은 중지하는 등의 최종 감사 처분을 통보받았다. 서사창작과 폐지 등 12개 항목을 지적했던 지난 5월의 감사결과에 비교하면 대폭 완화된 내용이다. 문화부로선 '무리한 감사'라는 비판 여론이 커지자 한 발 물러선 셈이다.

감사 처분 이행 여부는 신임 총장의 몫이다. 후임 총장 후보는 지난달 2차에 걸친 투표를 통해 김남윤 음악원장과 박종원 영상원장이 선출됐는데, 두 명 중 한 명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박 원장은 뉴라이트 관련 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데, 한예종 학생 비상대책위가 이미 반대 성명을 발표해 또 다른 분란을 예고하고 있다.

학생들과 학부모, 교수들로 구성된 한예종사태대응연석회의(한사연)도 이론과 축소 등 문화부의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총장이 결정된 후에도 한예종은 '예술'보다는 '정치'의 파도 속에서 한동안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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