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많은 것을 일궈 놓았는데 지키지 못하게 돼 직원들이 참 안타까워 합니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을 연출한 이광모 백두대간 대표의 얼굴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영화사 백두대간이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예술영화전용관 씨네큐브의 운영에서 손을 떼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차기작 연출 준비에 열정을 다할 수 있게 돼 섭섭하다기 보다는 시원하기만 하다"고 했지만 그 속이 어디 편하기만 할까.
2000년 12월 문을 연 씨네큐브는 국내 예술영화관을 대표하는 이름이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불을 켜지 않고 오징어, 팝콘을 먹을 수 없도록 한 몇 가지 원칙에는 예술영화관으로서의 자부심이 배어있었다.
지난해 이 곳을 찾는 관객은 18만2,000명. 대형 멀티플렉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그러나 2개관 총 376석에 소수의 애호가들만 찾는 점을 감안하면 놀랍기만 한 수치다. 회원만도 7만8,000명. 최근에는 길 건너편 미로스페이스와 소격동 씨네코드선재 등과 함께 일명 '광화문 벨트'를 형성하며 일부 주부들 사이에서 '브런치 예술영화' 바람을 주도했다.
지금의 씨네큐브가 있기까지 백두대간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1994년 첫 걸음을 뗀 백두대간은 할리우드와 충무로 상업영화가 지배하던 극장가에 '예술'을 심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타인의 취향' '브로크백 마운틴' 등을 수입 상영했다. '배낭영화제' 등 각종 기획행사를 통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시선을 넓혔고 씨네큐브를 예술영화의 중심으로 견인했다.
이 대표는 "그 동안 두번 정도 그만 둘까 생각할 정도 재정적으로 어려웠다"고 했다. 그래서 극장 소유주인 흥국생명의 결별 의사를 큰 서운함 없이 받아들였다. 흥국생명은 "자체 운영할지 여부 등 향후 계획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으나 극장이 문닫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주방장 떠난 뒤 간판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음식 맛이 그대로 이어질까. 수난 많고 굴곡진 국내 예술영화 역사의 한 장이 또 이렇게 짙은 한숨 속에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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