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 강행처리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국회에서 물리적 충돌을 거친 여야는 이제 곳곳에서 전선을 형성해 맞대결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연일 전국을 순회하면서 가두홍보전을 벌이고, 법리논쟁을 확산시키는 등 총공세를 펴고 있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사전선거운동'이라면서 역공을 가하는 한편 민생탐방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여야는 3일 재투표, 대리투표에 이어 사전투표 문제로도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은 이날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방송법 재투표를 선언하기 전에 이미 한나라당 의원 68명이 투표를 끝낸 상태였다"며 사전투표 의혹을 새롭게 제기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전광판에 표시된 68명은 실제 투표가 시작돼서 20초가 경과된 뒤 투표 결과"라고 반박했다. 이런 대치 상황에서 여야의 접점 찾기는 가능할까. 한국일보는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인터뷰를 갖고 현 정국에 대한 입장과 갈등 해법을 들어보았다.
■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민생 외면한 장외투쟁 여론 역풍"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3일 미디어법 처리 무효를 주장하는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민생을 구하는데 매진해야 할 때 야당이 법과 상식을 뛰어넘는 단말마적 행동을 하는 것은 국민들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민주당은 이미 역사 속으로 흘러간 미디어법은 잊어버리고 머리 맞대고 산적한 민생 현안을 풀기 위해 국회로 돌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계속하고 있는데.
"지금은 장외투쟁을 할 때가 아니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구하는데 총 매진해야 한다. 설령 장외투쟁을 하더라도 법도가 있어야 한다. 전쟁 때도 전시법이 있다. 내가 20여년 동안 정계에 있었지만 상대당 의원들 지역구까지 찾아가서 항의투쟁을 하는 것은 처음 봤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가정까지도 쳐들어갈 것인가."
-미디어법을 합의 처리할 순 없었나.
"합의처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끝까지 합의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지 않고 반대만 했다. 일방 처리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합의 처리나 마찬가지다. 6월 국회 때 표결처리 한다는 절차적 합의는 이미 3월 초에 했다. 내용에 있어서도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종합적 안이다."
-야당은 대리투표 의혹을 지속 제기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 안에서 대리투표 할 이유가 없다. 소가 웃을 일이다. 투표 방해가 계속되니 절차가 지연된 것이다."
-민주당은 미디어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등을 청구했다.
"헌재에서 그런 청구를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주장은 법률적인 게 아니고 정치적인 것이다."
-박 대표는 요즘 민생 탐방 차원에서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데.
"지금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이 서민들이다. 경제ㆍ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덜어드리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드리기 위해 현장을 찾는 것이다. 정책을 통해 약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드릴 것이다."
-9월 정기국회의 정상 가동이 어려워 보이는데.
"민주당의 협조를 받아내야 한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산적한 문제를 풀지 않으면 정치권 전체가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의 표적이 될 것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이다. 민주당도 정기국회에는 응하리라 본다."
-민주당이 국회로 돌아올 명분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것도 서로 이야기를 해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먼저 대화부터 하고 거기에 따라서 해결책을 만들면 된다."
-10월 재보선 출마 결심은 했나.
"내심으로는 작심을 하고 있지만 공개적으로 밝힐 단계는 아니다. 당내에 여러 사정이 있는 만큼 요즘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
-청와대와 내각 개편의 방향에 대한 생각은.
"그동안 이야기를 많이 한 만큼 이 시기에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정녹용 기자
■ 정세균 민주당 대표/ "現정권 국정운영 민심이반 심각"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3일 "야당이 장외투쟁을 하면 비판적인 분들이 많기 마련인데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며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법 통과에 문제가 있다는 데 공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디어법 원천무효 100일 투쟁' 목표 아래 지방을 순회하며 가두홍보전을 펴고 있는 정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그간 접한 밑바닥 민심을 이같이 전했다. 정 대표는 "국민들은 법안 내용을 반대하는데 절차까지 엉망이니까 미디어법을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방을 돌고 있는데 민심은 어떤가.
"미디어법은 물론이고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민심이반이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 부산과 대구를 다녀왔는데 그곳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았다."
-이미 미디어법이 통과됐는데 현실적으로 되돌리긴 어려운 것 아닌가.
"언론악법에 대한 반대와 찬성 여론이 거의 7대 2대 정도로 나뉜 상태인데 한나라당이 밀어붙였다. 또 재투표, 대리투표 같은 절차적 하자까지 만들었다. 법안 내용에 문제가 있는데 절차까지 엉망이니까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미디어법 통과가 그렇게 큰 문제인가.
"여론 다양성을 무시하고 보수 일색의 여론환경을 만들어 영구집권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더구나 국민이 반대하고, 야당도 밥 굶고 의원배지 떼더라도 결사 항전하겠다는데 밀어붙인 것이다. 국민과 야당을 이렇게 무시하는데 지금 야당이 싸우지 않으면 언제 싸우겠는가."
-아침 당 회의에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새 이사진 인선을 비판했는데.
"지난번 KBS 사장을 무리하게 바꿨다. YTN도 그랬고, MBC 사장도 흔들기 시작했다. 현정권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사 사장은 바꾸겠다는 것 아닌가."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법학도의 상식으로 보면 결정적인 절차상 하자가 있다. 헌재가 자료 요구한 것을 보면 면피하지 않고, 책임 있게 나가려는 게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
-여야 대치 국면의 돌파구를 제시할 계획은 없나.
"미디어법 협상 막바지 때는 대화와 타협을 해볼까 했는데, 이제는 여당이 저질러 놨으니 그 정리가 우선이다. 영수회담으로 될 것 같진 않다. 정부ㆍ여당이 국민 여론을 수용해 물러서거나 헌법재판소 판단으로 상황이 정리되는 수밖에 없다."
-9월이면 정기국회인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민들은 야당이 국회를 다 비우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유연하게 판단하겠다."
-여당은 야당의 장외홍보전을 사전선거운동이라고 공격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150만명 사면하는 것도 사전선거운동인가. 거대여당이면 체통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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