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슈퍼마켓(SSM) 진출 무산, 기업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지원 중단, 기업형(영리형) 의료법인 도입 연기 가능성….
MB노믹스(이명박 대통령의 경제철학ㆍ정책)가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가 ‘친서민’ 정책 행보를 강화하면서,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를 기치로 내걸었던 MB노믹스는 기로에 선 채 그 정체성 마저 흔들리는 모습이다.
정부가 벌어진 양극화를 치유하고, 특히 경제위기 이후 고통에 신음하는 서민ㆍ자영업자ㆍ중소기업을 보듬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 하지만 서민정책이 급하게 덧씌워지다 보니 MB노믹스의 기존 틀과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지고 있고, 이로 인한 기업들의 불만과 실무 정책 담당자들의 혼선도 커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최근 확산되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상인간 갈등. ‘친서민’을 앞세운 정부의 지원사격으로 대형 유통업체들의 SSM 출점을 저지시킨 중소상인들의 기세는 현재 서점, 미용실, 꽃집, 주유소, 제과점 등 다른 업종으로도 들불처럼 번질 조짐이다.
재계 관계자는 “중소상인 보호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런 식으로 지역ㆍ업종을 망라해 대기업 진출을 원천 봉쇄하는 식으로 나가면 자유로운 기업활동 보장이라는 MB노믹스의 기본철학이 무색해진다”며 “친서민 정책과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은 구분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임시투자세액공제(임투공제)도 정부의 친서민 행보에 희생양이 되는 분위기다. 정부는 ‘서민증세’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기업설비투자분 10%를 세금에서 깎아주는 임투공제를 연말에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 불과 3개월 전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 공제폭을 오히려 확대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급조된 세제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키 힘들다. “언제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한 지원이라더니 이제 와서 없애는 게 말이 되느냐”는 재계의 불만이 무리가 아니다.
연말께는 영리 의료법인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또 한 차례 홍역이 예상된다. 용역 결과를 토대로 11월까지 도입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인데, 지금의 친 서민 행보를 감안하면 도입 강행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4일 “영리의료법인이 반(反)서민 정책 논란으로 비화될 소지가 커 당장 도입하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 ‘MB노믹스’가 지나치게 부자ㆍ대기업 친화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고, 서민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에서, 최근 정부의 ‘친서민’ 행보 자체는 옳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명확한 원칙과 기준없이 사안에 따라 친서민 원칙, 비즈니스 프렌들리 원칙을 뒤죽박죽 들이대면 결국 계층간 갈등과, 재정 악화, 정책 일관성 훼손 등 부작용만 커지게 된다.
김광두 서강대 교수는 “정부가 친 서민을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 정치적 이유가 있는 탓에 실체도 불분명하고 원칙도 확고하지 못한 것 같다”며 “현 정부에서의 서민정책은 어떤 모습이고 기존 정책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두 정책간 충돌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지 그 기준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시장경제와 서민경제, 기업친화와 서민친화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경제철학 ‘뉴 MB노믹스’를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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