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지난 달 말 2분기 깜짝 실적을 발표하면서 양념처럼 덧붙인 뉴스가 하나 있다. 전사 차원의 자산 효율화 노력의 하나로 최고 경영진이 주로 이용하던 전용기 3대 중 하나인 글로벌 익스프레스를 500억원 대에 매각하고 전자제품 판매와 직결되지 않는 스포츠마케팅 예산도 30% 축소키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언론은 경제위기 속에서도 삼성전자의 핵심역량과 기초체력이 빛났다고 상투적인 해석을 앞세웠지만, 회사측은 실적 호전이 휴대폰과 TV부문의 선전이나 반도체와 LCD경기의 회복보다 환율효과와 비용절감의 효과임을 강조했다. 최고 경영진의 전용기를 팔아서라도 비용을 줄여야 할 만큼 경영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줘 임직원과 협력업체 등 안팎의 경각심을 고취하고 혹독한 비용 절감과 고강도 구조조정의 공감대를 얻으려는 뜻이었을 게다.
전용기 팔고 3조 절감 등 초긴축
LG전자도 선제투자와 마케팅 기술력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돼 2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하면서 남다른 위기관리 효과가 더 크게 작용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올해 구매 프로세스 최적화로 1조원, 일반관리비에서 2조원 등 모두 3조2,000억원대의 비용을 줄인다는 남용 부회장의 구상에 따라 전사적으로 비용절감과 성과 관리 혁신작업을 병행한 것이 놀라운 실적으로 연결된 핵심 요인이라는 설명이었다. 회사측은 하반기에도 '남용식 관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세계 휴대폰과 TV 시장의 3대 중 1대는 한국제품이고, 반도체 시장에서 흑자를 낸 유일한 업체도 한국기업이라는 뉴스는 분명 반갑고 우리의 어깨를 으쓱하게 한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현대차 SK 한화 POSCO 등 다른 대기업들도 비용 절감을 중심으로 한 긴축경영과 함께 제품 및 마케팅 혁신, CEO 역량 등에서 남다른 DNA를 발휘해 우리 경제를 위기의 터널에서 끌어내는 동력이 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 대표는 대기업들이 자랑하는 '비용절감의 경영학'에 대해 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명망 있는 대기업들의 노력을 과소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사기업의 특성상 경영진이 마음먹기에 따라 비용은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예를 들어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비용을 30% 줄이겠다고 결정하면 회사 내 각 조직과 임직원은 '30%룰'에 모든 것을 맞추게 되고, 그 잣대는 하청업체나 협력업체에까지 무차별 적용된다는 것이다. 냉소 섞인 그의 얘기는 대기업의 화려한 실적을 뒷받침하기 위해 물 밑에서 죽기살기로 발을 놀렸을 법한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애환을 간접적으로 전해줬다.
때마침 IBM과 캐터필러 등 2분기에 깜짝 실적을 낸 미국 기업들의 비결이 상당부분 대규모 감원 등의 비용절감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매출은 줄었는데 이익이 크게 증가한 내역을 들여다보니 사람과 비용을 가차없이 줄이고 또 줄였더란다. 이에 따라 2007년 경기침체가 시작된 이래 18개월 동안 미국에서 실업자가 전체 고용인구의 4.7%인 650만명이나 늘어났는데, 경기가 회복세를 보여도 실업사태가 완화될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위기에 처하면 불요불급한 지출이나 낭비요인을 제거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은 당연한 처방이다. 그것이 또한 조기에 성과를 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자본이 재생산 구조를 복원하는 것과 달리 노동과 소자본은 소외되거나 궁핍화로 내몰린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례는 그 단초를 보여준다. 우리 경우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근로자 수는 감소일로를 걸어왔으며 그 추세는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협력업체 등에 부담전가 의구심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안에서 고용유지와 투자, 대ㆍ중소기업 상생 등 다중 압박을 받으면서도 험난한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는 것은 분명 평가할 일이다. 하지만 최대 수익원으로 꼽는 비용 절감이 어디서 어떻게 이뤄지는지도 밝혔으면 좋겠다. 재계 수장들은 정치와 강성 노조의 이기주의를 탓하는데, 본인들에게는 그런 부분이 없는지 궁금하고 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어떤 모습으로 재편될지 걱정돼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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