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기만 하면 이길 때가 있었다. 잘하면 1등, 못해도 2등. 그러나 이젠 패배에 익숙해져야 한다.
'아시아의 거포'로 이름을 날렸던 강만수(54) 한국전력 KEPCO45 감독은 부산ㆍIBK 국제배구대회에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느꼈다. 프로배구 데뷔전이었던 이란 사이파와의 경기(25일)에서 3-2로 이길 땐 짜릿했다. 하지만 LIG손해보험(27일)과 현대캐피탈(30일)을 상대로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곤 속이 타 들어갔다. 1승2패로 예선 탈락.
한전 선수단은 지난달 29일 일찌감치 짐을 쌌다. 선수들에게 9일까지 여름휴가를 준 강 감독은 마음이 복잡했다. 7월1일에 사령탑에 취임했으니 딱 한 달이 지났다. 한전은 2008~09시즌 4승31패로 최하위였다. 패배보다 승리가 많아지려면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러나 야속하리만큼 시간은 빨랐다.
"잘했습니다. 우승후보 사이파를 이겼잖아요? 선수들이 열심히 뛴 결과죠. 그러나 아직 멀었습니다. 모든 게 부족합니다."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지만 욕심이 있었던 눈치였다. LIG와 현대캐피탈도 이기고 싶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겁니다. 지면 기분 나쁘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승부사 특유의 자존심이 발동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40년 전인 1969년. 경남 하동중 3학년 강만수는 배구를 시작했다. 까까머리 소년은 3년 만에 국가대표가 되고,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포가 됐다.
부산 성지공고 3학년이었던 72년 강만수는 최연소 국가대표(17세)로 뮌헨올림픽에 출전했다. 구기종목에서 고교생이 국가대표가 된 건 강만수가 처음이었다. 이때부터 강만수란 이름은 거포 계보를 꼽을 때 가장 먼저 불렸다.
"선수로 성공했으니 감독으로도 성공해야죠!" 강 감독은 93년부터 2001년까지 친정팀 현대자동차서비스(현 현대캐피탈) 감독을 지냈지만 아픈 기억이 있다. 94년과 95년엔 고려증권을 꺾고 우승했다. 막강 전력을 구축했지만 97년부터 신생팀 삼성화재에 밀려 만년 2위에 그쳤다. 성지공고 1년 후배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에게 철저히 눌린 셈이다.
8년 만에 배구판에 복귀한 강만수 감독은 "이렇게 떨릴 줄은 몰랐다"고 고백했다. 프로 데뷔전이었던 사이파전에선 얼마나 긴장했는지 다리가 휘청거렸다. "첫 승리의 기쁨이 이렇게 달콤할 줄 몰랐다"던 강 감독은 이젠 LIG와 현대전 패배를 곱씹는다. "데뷔전 승리는 기억 나질 않습니다. 거포가 없는 팀 사정상 이기는 배구를 위해 수비에 매달릴 겁니다."
대회가 끝나기도 전에 짐을 챙겨야만 했던 '아시아의 거포'는 이를 악물었다. "거포가 없으니까 수비에 승부를 걸어야지요. 우리 블로킹이 낮으니까 강한 서브로 리시브를 흔들어야죠. 저를 선택해준 한국전력 기업 규모에 맞는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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