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영화상에서 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긴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원제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Vicky Cristina Barcelona)다. 네 남녀의 기이한 사랑이 얽히는 이 영화에서 스페인의 고도 바르셀로나는 공간적 배경을 넘어 주연 역할까지 한다.
고색창연한 유적과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손길이 빚은 건축물이 등장 인물의 마음을 움직이고 이들의 심리를 반영한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이라면 당장 바로셀로나 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은 충동이 가슴 바닥에서 솟는다.
공간이 단순한 배경에 머물지 않고, 또 다른 등장인물 역할을 해내는 영화 제작이 '영화, 한국을 만나다'(아리랑국제방송ㆍ디앤디미디어 기획)는 이름아래 국내에서도 추진된다. 서울과 부산, 인천, 춘천, 제주가 캐스팅 됐으며 배창호, 윤태용, 문승욱, 김성호, 전계수 등 영화 감독 5인이 메가폰을 쥔다.
1부당 50분, 총 10부작으로 제작될 '영화, 한국을 만나다'는 이 달 촬영을 마친 뒤 2, 3개 부로 각각 묶여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출품될 예정이며 극장 개봉도 추진된다. 11월 말 이후엔 아리랑TV 등을 통해 안방을 찾는다.
한국의 지리적 오늘을 껴안은 이들 영화는 미학적 가치를 넘어 관광자료와 기록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자리를 함께 한 5인의 감독은 "침체에 빠진 한국 영화에 숨통을 틀 수 있는 기획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주
배창호 감독은 '여행' 3부작으로 제주를 담는다. 제주를 찾은 젊은 배낭족 커플과 신혼여행 부부, 노부부의 사연을 통해 자연과 인간과 사랑을 이야기 한다.
배 감독은 "상업적으로 옥죄는 제약들이 없으니 주류영화에는 없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며 "영화 입문 당시의 마음으로 창작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밝혔다. 배 감독은 "'아라비아의 로렌스'하면 곧바로 사막이 떠오른다. 인간의 이야기는 자연과 떨어질 수 없다"며 영화 속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울
국토의 심장 서울은 윤태용 감독이 '서울타워'(가제) 2부작으로 그린다. '소년, 천국에 가다'로 물기 어린 감수성을 발휘했던 윤 감독은 "정치적 이슈로 해외 토픽에 오르내리던 서울을 로맨스와 연결 시키려한다"고 말한다. 서울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으려는 스태프, 배우들의 사연과 사랑이야기가 카메라에 담긴다. 가수 박지윤의 연기 복귀작이다.
윤 감독은 "몇 년 전 로마를 갔더니 젊은이들이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처럼 스페인광장에서 본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먹더라"며 "삼청동 등 되도록 재래적인 공간을 담아 기록의 의미까지 지닌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
인천은 '나비'와 '로망스'로 주목 받은 문승욱 감독이 '플라이 인천'의 이름으로 묘사한다. 인천에서 일약 유명인사로 떠오른 몽골인의 행적을 추적하며 국제도시 인천의 결을 2부작으로 렌즈에 옮긴다. 문 감독은 "늘 이방인의 도시이며 옛 것과 현대가 얽히고 충돌하는 인천의 모습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산
항도 부산은 '거울 속으로'의 김성호 감독에 의해 스크린에 투영된다. 죽은 남자 친구와의 추억이 어린 장소를 오토바이로 찾는 한 여자와 가출한 딸을 찾아 나선 사진작가의 인연이 부산을 매개로 맺어진다.
로드무비 형식에 판타지가 가미된 영화의 제목은 '그녀에게'(2부작). 김 감독은 "영화도시 부산에서 그 동안 보여지지 않은 장소를 위주로 촬영할 것"이라며 "도시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교류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려 한다"고 밝혔다.
춘천
'삼거리 극장'으로 재기발랄한 연출력을 인정 받은 전계수 감독은 '나쁜 충동'으로 낭만의 도시 춘천을 만난다. 슬럼프에 빠진 유명 화가가 춘천에서 젊은 예술학도를 만나 회복하는 과정을 담는다. 전 감독은 "사랑과 예술의 도시 춘천을 화장기 없는 여자 얼굴처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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