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1961년 5ㆍ16과 1979년 10ㆍ26 당시 정치상황을 농밀하게 기록한 자전적 실록 <5ㆍ16과 10ㆍ26: 박정희 김재규 그리고 나>를 출간했다.
8선 의원을 지낸 이 전 의장은 3일"역사의 패륜아로 인식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왜 그러한 상황을 맞았고,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를 기록으로 남겨 유사한 불행의 재발을 막고자 집필했다"고 말했다.
책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필화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는 개인사에서 시작,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단독인터뷰를 계기로 1963년 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는 과정을 담담히 그린 뒤 절정인 10ㆍ26으로 치닫는다.
10ㆍ26의 원인에 대해 책은 "문제는 차지철(당시 대통령 경호실장) 이었다"고 밝혔다. 이 전 의장은 "당시 김 부장은 나를 만나 차지철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다고 한탄했고, 군 동기들에게는 차지철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 같으니 없애야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고 기록했다.
이 전 의장은 박 전 대통령, 김 전 부장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고,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부장 간 인연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전 의장의 정치적 스승이었고 김 전 부장은 이 전 의장의 중학교(대구 대륜중) 스승이었다.
김 전 부장은 박 전 대통령의 고향 후배이자 육사 2기 동기생이다. 사단장 시절 김 전 부장을 연대장으로 거느렸던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부장을 건설부장관, 중정부장 등에 기용했다.
하지만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후 대통령 경호 업무를 맡은 차지철 실장은 당시 군대 선배인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을 견제하고 김 부장의 대통령 보고까지 방해했다고 한다.
특히 차 실장은 여론을 무시하고 부마사태 강경진압, YS(김영삼) 제명사태를 주도하면서 2인자 행세를 했다. 국회에서 차 실장을 위해 행동하는 의원과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쓰는 의원을 합치면 20명 정도가 됐다고 이 책은 묘사했다.
책은 시해사건의 직접적 원인이 박 전 대통령, 김 전 부장, 차 전 실장 3자간의 미묘한 갈등관계였다고 밝혔다. 정권의 파국은 권력 핵심부의 균열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 전 의장은 박정희 정권 몰락에 대해 "무리한 3선 개헌, 유신 이후 장기집권에 따르는 권력의 타락과 부패가 직접적 계기"라고 밝힌 뒤 김대중 납치사건, YS 제명 사건, 10대 총선에서의 공화당 패배, 광범위한 민심이반 및 부마사태 등을 결정적 이유로 꼽았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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