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결국 형을 상대로 법적 대응이란 카드를 꺼냈다.
박삼구 명예회장이 주도한 이사회의 해임으로 그룹 경영에서 퇴진한 박 전 회장은 3일 '임직원들에게 드리는 글'이란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자신의 해임을 의결한 금호석유화학 이사회 의결이 불법적으로 이뤄져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총수일가 형제의 동반 퇴진과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으로 혼란이 매듭지어지는 듯했던 금호 총수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결국 법정으로 가게 됐다.
대우건설 인수 당시 반대했나
형제간 분쟁의 불씨가 된 대한통운 인수와 대우건설 인수 및 매각을 놓고서 박 명예회장과 박 전 회장측은 서로 책임전가를 하고 있다. 박 전 회장은 "금호석화의 내실위주 경영방침은 박 명예 회장의 외형추구와는 상치돼 인수를 반대했지만, 박 명예회장이 무모한 가격과 풋백 옵션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조건으로 인수를 강행했다"고 말했다. 박 전 회장은 이를 막는 과정에서 박 명예회장과의 마찰이 불가피했고, 유동성 위기가 금호석화에 급속히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호석화 주식을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측은 "2006년 12월15일 '대우건설주식 매매 체결건'으로 열린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에서 박 전 회장 본인이 임시의장까지 맡아 8명의 이사중 6명이 참가한 가운데 만장일치로 안건을 통과시켰다"면서 "상황이 나빠지자 형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사회 불법 있었나
박 명예회장은 지난달 28일 동반 퇴진 기자회견에서 "박 전 회장의 해임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져 법정 소송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지만 박 전 회장측은 성명서에서 이사회 소집 절차와 투표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박 전 회장은 "박 명예회장이 이사회를 소집하며 이사회 의안을 '주요 경영현안'이라고 통보했다가 막상 이사회에서는 본인에 대한 해임안을 기습적으로 상정했고, 또 투표용지에도 이사들의 이름을 적도록 하는 등 이사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해임안을 가결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명예회장측은 "이사회 소집 시 모든 안건을 하나하나 명기해 알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며 "이사회 투표도 원래 기명투표로 진행되는데다, 이사회에 참석한 사외이사들이 박 명예회장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없는 만큼 압력 가능성은 없다"고 반박했다.
박세창 상무의 주식매입 의혹은
박 명예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상무의 주식 매입 과정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도 양측의 주장이 맞선다.
박 전 회장은 조카인 박 상무가 최근 금호석화 주식 매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호렌터카와 금호개발상사에 금호산업 주식을 340억원에 매각했는데, 이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다. 금호렌터카는 이미 대한통운 인수 후유증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대주주로부터 170억원이 넘는 계열사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또 금호개발상사가 30억원을 차입하면서까지 150여억원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 역시 의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박 명예회장측은 "주식 매입은 필요에 따라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됐고, 장내 매도를 하지 않고 계열사에 매각한 것은 시장에 팔 경우 경영권이 침해될 소지가 있어 경영권 방어차원에서 이뤄진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흔들리는 금호
박찬법 신임 회장을 선장으로 출범한 금호의 전문경영인 체제도 출항 초기부터 총수일가의 법정소송이란 암초를 만나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가뜩이나 재무구조개선약정 이행과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룹에 커다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아시아나IDT 등은 매각 작업이 완료됐거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그룹 유동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대우건설 매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재계 안팎에서는 박 명예회장이 박 전 회장과의 법정 싸움에 돌입할 경우, 대우건설 매각 등 재무구조개선 약정 이행에만 주력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고, 기업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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