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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노 前 대통령 타계/ 필리핀 국민 수십만 애도… 하늘서도 '피플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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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노 前 대통령 타계/ 필리핀 국민 수십만 애도… 하늘서도 '피플 파워'

입력
2009.08.0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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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장암 투병 끝에 1일 타계한 필리핀 코라손 아키노(76) 전 대통령은 필리핀 민주화의 주역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933년 필리핀의 명문 정치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아키노는 미국 뉴욕의 마운트 세인트 빈센트 대학에서 수학과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이후 전도유망한 정치인 베니그노 아키노를 남편으로 맞았지만 남편의 급작스런 피살로 반정부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직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성이었다.

그는 83년 야당 지도자였던 남편이 미국에서 귀국하다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하자 이후 정치에 뛰어들어 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부를 무너뜨린 이른바 '피플 파워' 무혈 봉기를 이끌며 마르코스의 20년 독재를 종식하고 집권에 성공했다.

'코리'라는 애칭으로 불린 아키노는 당시 남편의 암살이 마르코스 독재정부의 명령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100만명에 가까운 군중을 모아 독재정부를 무너뜨렸고, 당황한 마르코스와 그의 아내 이멜다는 하와이로 도피해야 했다.

필리핀의 민주화 경험은 한국과 남미 등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아키노는 비폭력 시위의 세계적인 상징이 돼 '현대판 잔 다르크'로 추앙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키노는 집권 후 대통령 재임 당시에는 무려 7차례에 걸쳐 군부의 쿠데타 기도에 시달렸다. 집권 1년만인 87년 대통령궁이 반대파의 박격포 공격을 받기도 하는 등 시련이 있었지만 피델 라모스 장군의 도움으로 군부의 쿠데타 기도를 막아냈다.

92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복지재단을 설립해 대외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2001년에는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하야를 이끈 시위에 참여했다. 이후 한 때 정치적 동지였던 글로리야 아로요 현 대통령이 부정선거와 부패 혐의를 받자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집회에도 적극 참여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80년대 초반 미국 하버드대에 체류하던 당시 아키노의 남편인 베그니노 아키노 상원의원과 의원과 교분을 나눴다. 이 때의 인연으로 아키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참석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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