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먼디(먼데)까지 뭐할라고 왔소. 어르신들이 싫어하신당께." 면 소재지에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길을 물어물어 찾아온 손님에게 하는 첫인사 치고는 여간 쌀쌀한 게 아니었다. "아따, 어르신…." 당황스러운 낯빛으로 말을 이으려 하자, 어르신들은 "반가운께 부러 그런 것이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곤 사각정자 마루 한 켠을 내어주며 올라오라고 손목을 잡아 끌었다.
"여기가 집에 대문이 없다는 동네여. 한마디로 열려 있는 동네란 말인디, 오는 손님한테 박대하겄는가? 잘 왔어. 여기 인심이 그렇게 거시기한 것은 아니랑게."
지난달 29일 낮 전남 해남군 화산면 송산리 송산마을. 오전부터 내리 쬐기 시작한 땡볕을 맞으며 찾아간 이 곳은 마을 앞으로 난 아스팔트 도로 너머로 푸른 들녘이 펼쳐진, 그다지 유별날 것 없어 보이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하지만 35가구 50여명 주민들이 바다를 메워 일군 땅에 농사 짓고 사는 이 마을엔 다른 마을과 달리 없는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집 대문이다.
아담한 돌담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자 집집마다 대문은커녕 대문을 달았던 흔적도 없을 뿐더러 담벼락도 거의 없어 마치 '서른 다섯 칸 한옥'에 들어온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곳이 '무문촌(無門村)', '대문 없는 마을'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집에 대문을 달믄 안 돼야, 절대 안 돼야. 이 동네는 니꺼 내꺼시 없어."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마을 최고령자 황인화(82)씨는 '대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정색을 하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 말은 내가 깨복쟁이 때(어린 시절)부터 들은 것이여. 이 곳에선 전부가 다 이녁 것이라고 보믄 돼야. 그래도 도둑이 없어. 그만큼 우리 동네는 모범 부락이여."
옆에 있던 윤재실(67)씨도 거들었다. "우리 집엔 열쇠고리라는 게 아예 없소. 누가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믄 문 열어주러 나가야 허고, 또 닫으러 가야 하고, 얼마나 불편하겄소. 그 망할 놈의 짓을 어찌게 하고 산다요. 글고 대문 없다고 도둑이 들고 그러지는 않소."
주민들은 이웃과의 단절을 상징하기도 하는 대문이 없어진 자리에 주민들간 정(情)과 신뢰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도둑도 없어졌다고 했다. 대문이 없으니 서로 남의 집도 제 집 드나들 듯 했고, 그러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신뢰와 친목이 돈독해졌다는 것이다.
"대문이 없어서 이 집 저 집 오고 가고 함시롱 살다본게, 느그 부모도 내 부모 느그 자석(자식)도 다 내 자석이다. 뭐 이런 맘들이 생깁디다."
실제 주민들은 30년째 매년 설날이면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올리는 풍습을 지켜오고 있다. 덕분에 몇 년 전 경로효친 시범마을로 지정되기도 했다.
칠순의 한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마을에 대문이 없었으니 마을에서 대문이 사라진 게 족히 100년은 됐을 것"이라며 "고샅을 지나가다가도 어느 집에서 뭔 일을 하고 있으면 그냥 못 지나가고 반드시 일을 거든다"고 말했다.
대문을 달지 않는 풍습은 예부터 구전돼온 '가재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지형이 가재 모습을 닮은 마을엔 가재가 집집마다 복을 가져다 준다는 말이 전하는데, 가재는 뒷걸음질치는 습성이 있어 대문을 달면 뒤로 가다 대문에 걸려 못 들어가니 집안이 망한다는 것이다.
"한 20년 전에 한 주민이 농협 양곡창고 옆에 집을 짓고 대문을 달았는디, 글씨 얼마 못 가서 집이 망해블드라고. 지금은 그 터도 안 남아 있당게." 윤재출(72)씨는 "이 마을에서 대문 달고 잘된 집이 없었다"며 직접 사례까지 들어가며 설명했다.
이 때만해도 주민들은 어쩌다 맞아 떨어진 우연의 일치이려니 했지만, 대문을 단 집마다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고 누군가는 꼭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주민들은 그 전에도 그랬지만, 그 '사건' 뒤로는 아예 집에 대문을 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들 입을 모았다.
이곳 주민들은 올해 안에 마을 입구에 '대문 없는 마을, 송산마을'이란 표석을 세울 계획이다. "객지서 잘된 출향인들이 기금을 내놓으면 좋고, 안 주믄 그만이고. 그렇다고 손을 벌리겄어, 어쩌겄어." 다른 곳에 손 안 벌리고, 주민들의 힘으로 대문 없는 '우리 마을'을 지켜나가겠다는 각오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면 주민들끼리 십시일반으로 건립기금을 모아볼 계획이라고도 했다. 가을에 추수를 끝내고 나면 돈이 좀 생기니, 염치불구하고 그때쯤 돈을 걷으러 돌아다녀보겠다는 요량이라고 했다. 마을 입구까지 따라 나와 배웅을 하던 이장 채수남(64)씨가 웃으며 한마디 건넸다. "내년 이맘 때나 한 번 더 오실라요? 그때는 멋드러진 표석이 서 있을 것잉게."
해남=안경호 기자 k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