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캐럴 지음ㆍ전일휘 등 옮김/동녁 발행ㆍ864쪽ㆍ3만2,000원
9ㆍ11이란 숫자는 아이러니 그 자체다. 9ㆍ11, 즉 9월 11일은 1941년 펜타곤 건물이 착공된 날이자, 훗날 9ㆍ11 테러가 일어난 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9ㆍ11 테러 이후 '악의 축'이니 '충격과 공포'니 하는 수사들은 21세기의 색깔을 일찌감치 운명지웠다. 그 중심에 펜타곤(미국 국방부), 즉 '전쟁의 집'이 있다.
"9ㆍ11 테러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즉각적인 대응은 1943년 이래 미국의 역대 행정부들이 오랫동안 준비했던 것이라는 사실이다."(698쪽) 1950년 한국전쟁,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1990년 걸프전 등에서 그랬던 것처럼 미국은 군 통수권자의 끝없는 전쟁 의지 때문에 국방부의 거대한 예산을 당당하게 더욱 늘려왔다고 이 책은 지적한다.
세계경찰로서의 미국을 상징하는, 이 5층짜리 5각형 건물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떤 목적 아래 수행돼오고 있을까. 펜타곤 안의 풍경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군사적ㆍ관료적일까. 펜타곤의 실질적 주재자는 전쟁 도구를 넘어 아예 "신흥 종교를 대표하는 신"(15쪽)의 위치까지 격상한 핵무기가 아닐까. 그 모든 것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펜타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에서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을 거쳐 걸프전, 아프가니스탄전, 관타나모 수용소 포로 학대 사건 등 현대사의 굵직한 결절점마다 펜타곤은 최고이자 최후의 실력자로 존재했다.
이 책의 저자가 미국의 전쟁사를 펜타곤의 역사와 동일시하는 것은 그래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경우, 장기전으로 치닫는 한국전을 확실하게 종식시키기 위해 핵무기 사용을 준비했다(301쪽)는 사실은 펜타곤의 기본 전략이 '대량 보복'에 기반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특히 세계적으로 공산주의가 득세하던 1950년대에 원자폭탄보다 훨씬 강력한 민간인 몰살이 예상된 수소폭탄 사용이 적극적으로 검토됐다는 것이다.
소설가ㆍ칼럼니스트로 1996년 내셔널북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한 작가인 저자는 신랄하다. 이라크전을 명백히 "복수 행위"로 규정한 그는 미디어를 통해 파괴된 이라크의 참상을 확인하며 "우리는 알 수 없는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710쪽)고 털어놓는다. "상처 입은 자존심"과 "근거 없는 복수심"위에 미국 최고 권력기관이 존립해 있다는 저자의 폭로는 미국의 실체를 돌아보게 한다.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은 복수심에 불타는 국민이 돼버렸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펜타곤과 운명적으로 얽혀 있다. 아버지는 공군 장성이자 국방정부부 소장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깊이 개입했던 반면 아들인 저자는 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가톨릭 사제였다가 작가로 전업, 이 책에서 펜타곤과 미국 패권주의의 비극을 폭로한 것이다.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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