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70)씨의 새 소설집 <희망사진관> (문학과 지성사 발행)의 수록작 '나무의 길'은 작가가 거처하고 있는 고향 전남 장흥의 작은 토굴 작업실이 무대다. 희망사진관>
작가의 분신인 화자는 멀리 소록도가 굽어 보이는 토굴에서 걸어 나와 바닷가를 산책하며 인간과 우주에 대한 사유의 날개를 펼치고 소설을 구상한다. 과연 사람의 길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화자에게 어느 날 토굴 앞의 늙은 감나무가 말을 건다.
"이 세상의 삶이 인간이 우선적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인간 본위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그대의 휴머니즘이란 것이, 우주 삼라만상에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 줄 아는가? 인간의 길이 공격적인 남근의 길이라면 식물성인 나의 길은 수용하고 키워내는 여근(자궁)의 길이네."
<희망사진관> 에는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현실세계의 폭력성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이 뚜렷이 녹아있는 10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인간만을 위한 인간주의, 개발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출발해 10여년간 여성성ㆍ식물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 작가의 생각이 소설적으로 형상화했다. 희망사진관>
자기의 삶이 없고 자기의 자궁 속에 든 아기의 삶만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 대리모들이 막상 출산 후 설움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는 '서러운 눈물로' , 남성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회적인 폭력을 경험한 한 여성이, 여성적 정체성에 대한 주체적 자각을 통해 차별적 시선을 극복한다는 '고추밭에 서있는 여자', 꽃과 대화를 하는 무녀 출신의 촌로에 대한 이해의 과정을 담은 '산 목련꽃' 등은 작가의 이런 주제의식을 잘 그려내고 있다.
한씨는 '작가의 말'에서 "우주의 율동은 남근적인 가학(공세)과 자궁적인 피학(포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모성의 우주 속에서 떼쓰는 아이들이다"라고 썼다.
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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