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東醫寶鑑)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동의보감의 세계성과 보편성을 입증한다. 일반적으로 동의보감을 허준 개인의 저작물로 생각하지만, 동의보감은 국가가 주도해 당시까지의 동양의학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허준은 어의로서 편찬 작업을 이끈 책임자였다.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보건ㆍ의료 체계가 취약했던 1596년 조선 실정에 맞는 의서 편찬을 지시했고, 특별 기구인 편서국(編書局)에서 편찬 작업이 이뤄졌다. 정유재란으로 잠시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1610년 집필이 완료, 1613년 내의원에서 초간본이 간행됐다.
동의보감은 국내 의서인 '의방유취(醫方類聚)'와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중국 의서 등 수백 종의 의서를 총정리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과 간단한 치료법을 싣는 한편 일부 약의 이름은 한글로 표기하는 등 위민사상을 실현했다.
최근에는 19세기 중반에 번역된 한글 필사본이 최초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 필사본은 내경편 중 1, 3, 5권이 남아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돼있다.
동의보감은 조선 왕실과 국민을 위한 기초 의서로 이용됐을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널리 유통될 만큼 그 보편성을 인정받았다. 중국에서 30여 차례, 일본에서 2차례 간행됐으며 1897년에는 미국인 랜디스에 의해 일부가 영역돼 서구에 소개되기도 했다.
유네스코 사무국은 이번에 동의보감 외에 '마그나 카르타'(영국), '안네 프랑크의 일기'(네덜란드), '니벨룽의 노래'(독일) 등 35건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새롭게 등재시켰다.
세계기록유산은 지난 6월 조선 왕릉이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유산(World Heritage)과는 구별된다. 세계유산이 국가간 협약에 따른 것인 데 비해,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 자체 사업인 데다 역사가 짧아 각국의 관심이 아직은 덜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은 세계기록유산도 조만간 세계자연ㆍ문화유산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보고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등재 노력을 펼쳤고, 그 결과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등재 건수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점차 높아지면서 최근 국가별 등재 신청 규모가 한 차례 회의당 3건 이하로 제한되기도 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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