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생들의 고액 등록금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전격 도입키로 한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에 대해 "긍정적 시도지만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학생들이 당장의 등록금 부담은 덜게 됐지만, 한해 1,000만원을 넘어서며 매년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 인플레' 구조는 놔둔 채 대출제도만 개선하는 것은 "빚더미의 상환만 유예시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번 제도는 등록금 대출 대상을 대폭 늘리고 졸업 후 소득 발생시까지 이자부담 없이 상환을 유예토록 했다는 점에서 등록금 관련 시민단체들이 그간 주장해온 '등록금 후불제'에 가깝다.
현 정부에 등을 돌렸던 진보적 시민단체들도 "중대한 진전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 "등록금 부담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일도 대폭 줄어들 수 있을 것"(등록금넷)이라며 오랜만에 긍정적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이 같은 환영의 목소리에는 단서가 달려 있다. 폭등하는 대학 등록금에 제한을 두는 '등록금 상한제' 등의 보완 대책과 병행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등록금넷 관계자는 "비싼 등록금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단지 갚을 시점만 뒤로 미루는 조삼모사식 해결책에 머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학생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서울시립대 3학년 김모(23)씨는 "당장 부담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등록금 문제의 핵심은 등록금 자체가 비싼 것"이라고 지적했다.
숙명여대 3학년 김모(22ㆍ여)씨도 "입학한 후로 연간 등록금이 100만원 이상 올랐는데 앞으로 또 오르면 그게 다 빚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 조치로 대학이 등록금을 손쉽게 거둘 수 있게 돼, 최대 수혜자는 학생이 아니라 대학"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번 제도 자체에 대한 보완 목소리도 높다. 우선 원리금 상환 의무가 발생하는 연간 소득기준이 정해지지 않아, 향후 재원이 부족할 경우 상환을 시작해야 하는 소득 기준액이 지나치게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S대의 한 학생은 "청년 실업으로 돈을 못 갚는 사람들이 많다 보면 재원이 바닥날게 뻔한데, 결국 대출금을 빨리 회수하려 들지 않겠느냐"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등록금 대출'의 덫에 걸려 청년기 내내 빚 갚느라 결혼이나 주택 구입 등은 아예 꿈도 꾸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지원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간 기초생활수급자는 연간 450만원까지 등록금을 무상으로 지급했으나 이들에 대해서도 무이자 대출을 일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생활비 200만원을 무상 지급하기로 해 결과적으로 연간 250만원의 무상 지급액이 사라지게 된 셈이다.
대출받은 액수 만큼 갚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득 수준에 맞춰 상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강남훈 교수노조 부위원장은 "소득의 일정 부분을 세금처럼 납부케 해, 소득이 높은 사람은 대출금을 더 많이 갚고 낮은 사람은 덜 갚는 것이 타당하다"며 "현재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이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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