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시론] 우리가 추락시킨 박태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시론] 우리가 추락시킨 박태환

입력
2009.08.02 23:45
0 0

완벽한 진공상태의 순수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곳이 어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싱싱한 활어와 같은 스포츠 선수의 경이로운 몸놀림에서 우리는 이 풍진 세상에 그리 밝게 빛나는 정신이 있다고 믿었다. 일상의 희망이 많지 않던 시대의 거룩한 위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그런 시절은 흘러갔다. 지금 누구도 대학을 '상아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작가들도 예전처럼 길거리나 술자리에서 우연히 찍은 사진을 책 한 귀퉁이에 수줍게 싣지 않는다. 연예계 스타처럼 스튜디오에 가서 근사한 포즈를 취하고 출판사와 신중하게 사진을 고른다. 언론 간담회, 사인회, 낭송회, 특강, 방송 출연 등의 '팬 미팅'을 통해 책의 상업적 성공을 노린다. 거리의 간구가 하느님의 성채 아닌 현실의 성채를 쌓아올리기 위한 헌금 기도로 바뀐 종교계의 현실은 굳이 언급할 것도 없다.

한때 견고한 다이어몬드와 같은 순수한 영혼들이 머물던 스포츠계도 '꾼'들이 판치는 세상이 된 듯하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들려온 박태환 선수의 안타까운 실패 소식은 결코 전신 수영복 문제 때문이 아니다. 자본 권력이 대세를 장악하고 꾼들이 모여들면서, 불과 1년 전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던 박태환 선수는 바닥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제 갓 스무 살 청년이 이 풍진 세상의 온갖 음모와 협잡과 상품화에 방치되었음을 우리 모두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비록 진공상태의 순수함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경지를 동경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대학과 작가와 종교와 스포츠계에도 일정한 규모의 자본이 필요하고 능수능란한 조력자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이 오로지 손익분기점이나 수익률에만 골몰한다면, 대학도 작가도 종교도 스포츠 선수들도 치명적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박태환 선수와 김연아 선수의 주변에는 순수한 사명의식에 투철하고 노련한 전문가들보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스포츠 시장에서 단물을 최대한 빨아먹으려는 '꾼'들이 너무 많이 몰려 있다. 두 선수 모두 오래 전부터 '훈련시간이 부족하다'고 호소한 바 있다. 아직 순진무구한 선수 자신들이 누구보다 먼저 문제를 인식하고 시정을 호소하는 데도,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애써 못 들은 체하거나 무심했던 결과를 우리는 지금 여실히 목격하고 있다.

우리가 박태환을, 그리고 김연아를 자본 권력의 포충망에서 해방시켜야 할 의무를 함께 지고 있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모든 어른이 공범이다. 그들이 세계선수권대회 1위를 하거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젊은 우리의 희망이 맨 처음 헤엄을 치거나 스케이트를 신을 때처럼 순수한 도전과 아름다운 몸짓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비단 그들의 장래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자본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라 하더라도, 젊은 선수들이 싱싱한 활어처럼 살아 숨쉬고 도약하는 몸짓을 사심없이 응원하고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는 스스로 희망을 내버리는 것과 같다. 젊은 이들의 유행어'지못미',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절묘한 표현으로 느껴진다. 박태환, 김연아 등 우리 모두의 희망이 우리를 다시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길은 우리 사회와 우리 자신을 날카롭게 질책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정윤수 문화스포츠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