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움직임이 잠잠했던 원ㆍ달러 환율이 다시 하락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주말엔 연중 최저점까지 갈아치웠고, 이번 주에서 새로운 기록갱신이 예상된다.
환율은 경제의 거울. 원화가치가 높아진다는 것(환율하락)은 어쨌든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해졌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환율은 약효 만큼이나 독성도 강해 외환딜러들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딜러들은 원ㆍ달러환율이 대략 1,200원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떨어지는 과정이 결코 순조롭지만은 아닐 것이며,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들이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환율, 올 들어 최저
지난달 31일 원ㆍ달러 환율은 1,228.5원에 거래를 마쳐 연중 최저점을 기록했다. 6월 이후 상당기간 박스권(1,250~1,300원대)에 머물던 환율은 지난달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내림세를 타고 있다.
가장 큰 배경은 외국인들의 주식 매수세. 미국과 한국의 주가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데다, 2분기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연달아 '어닝 서프라이즈' 수준으로 나오면서 한국 증시에 대한 외국인들의 입질이 지속되고 있다. 외국인들은 7월 한 달간 1998년 이후 월간으로는 가장 많은 5조9,000억여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불황형이기는 하지만 올 상반기 경상흑자 규모가 사상 최대(약 217억달러)를 기록하고, 최근 국내 금융사들이 잇따라 양호한 조건에 해외차입에 성공하고 있는 것도 환율을 끌어내리는 요소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나 달러 공급 측면에서 환율은 하락에 우호적인 분위기"라며 "당분간 증시 동향에 영향을 받으며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반기 환율 향방은
최근 분위기나 널린 재료들로만 보면 환율은 앞으로 계속 미끄럼을 탈 법도 하다. 하지만 환율은 양날의 칼이다. 너무 올라도, 너무 떨어져도 문제다. 바로 이 점이 딜러들을 신중하게 만들고 있다.
수출경쟁력을 염두에 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은 향후 환율하락을 저해할 제1 요소로 꼽힌다. 폭락이 아닌 한 섣불리 개입에 나서기는 어렵겠지만, 경기부양에 최선인 정부로선 환율하락이 결코 반가울 리 없다. 기업은행 김성순 차장은 "당분간 내수보다는 수출에 의존해야 할 처지여서 당국이 지속적으로 미세개입에 나설 수 있다"고 했고 우리은행 박상철 과장도 "1,250원선 아래에서는 계속 개입 경계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딜러들은 전반적인 하향세에는 동의하면서도 속도와 폭은 1,200원선 전후에서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외환은행 김두현 차장은 "미국의 경기회복 속도가 더뎌지면 환율은 다시 오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농협선물 이진우 부장은 "미국과 중국 등의 인위적 부양책에 의한 회복세 거품이 흔들릴 경우, 일시적 폭등세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외환보유액도 사상 최대 가나
여전한 불확실성에도 하반기 환율을 비교적 안정적인 하향세로 점치는 배경에는 환율의 '안전판'인 외환보유액 증가 기대가 자리한다.
정부는 현재 올 연말 외환보유액이 최대 2,700억달러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감소분(610억달러)을 모두 만회한 액수다. 큰 폭의 경상흑자를 배경으로 꾸준한 운용수익과 외화유동성 지원자금 회수분 등 증가요인이 확실해 하반기에도 보유액 증가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작년 초만 해도 외환보유액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이제는 '보유액은 충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서는 그래서 '하반기 정부가 수출 측면까지 고려해, 꾸준한 달러매수 개입(환율 상승 요인)으로 보유액을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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