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에 미스코리아들과 어울려 다녔다. 이런 공직자가 검찰총장이 돼서야 되겠는가?" 김준규 전 대전고검장이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이후 불거진 대표적 '흠결'인 양 여기저기서 수군거린다. 그러다 보니 국회 청문회장 주변에서도 혹시 '한 건 올릴 수 있는 거리'가 되려나 싶어 귀를 쫑긋거리는 모습들이 벌써 눈에 띈다.
미스코리아 대회는 한국일보사가 1957년부터 주최해오고 있다. 전후 정신적으로 피폐한 시대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축제의 장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했다. 지성과 교양, 아름다움을 겸비한 미인을 선발해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역할도 했다. 그 동안 과열경쟁으로 부작용을 겪었던 적도 있었고, 성의 상품화라는 비난에 직면한 적도 있었다.
10여년 전부터는 과거의 부작용과 비난을 지양하기 위해 새로운 기준으로 선발하고 있다. 그들의 역할도 장애인 돕기,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 한국복지재단 자선바자회 등 공익적 사회활동으로 확대됐다. 자연스럽게 세계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고, 국제적 문화교류에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억측에 휘말린 검찰총장 내정자
김 내정자는 대전고검장 재직 때 미스코리아 대전ㆍ충남 예선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대회 주최측이 요청하자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 수락했고, 심사위원 가운데 최고 연장자여서 자동으로 위원장이 됐다. 당시 김 내정자는 오히려 '검사 체질'을 버리지 못해 혹 뒷말이 나올 만한 여지가 있을까 봐 심사과정을 일일이 수정하기도 했다. 이후 서울의 본선 심사위원으로도 거론됐으나 대전고검장의 일과 무관하다며 스스로 거절했다.
미스코리아들과 '어울린' 것도 사실일 수 있다. 지역 예선대회에 당선되면 시청과 도청 등 관내 기관에 인사를 간다. 나중에 맡게 될 사회적 공익활동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주최측이 권하는 일이다. 그 동안 검찰청에 인사를 갔던 경우는 없었으나, 이번엔 심사위원장이 고검장이었다. 고검장실 옆 접견실에서 차장검사와 직원들 몇 명과 함께 미스코리아들을 만나 환담하고 덕담을 건넸다. 10분 정도 '어울린' 셈이다. 물론 근무시간이었고 주최측 관계자들도 함께 '어울렸다.'
또 '어울렸다'는 소문의 꼬투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미스코리아가 아니라 심사위원들이었다. 예선대회 직후 심사위원들끼리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며칠 뒤 사진이 현상돼 나와 당사자들끼리 저녁식사 자리를 갖게 됐다. 궁하지 않은 심사위원장이 당연히 밥값을 냈다. 주최측 관계자도 함께 식사를 했다.
꼬투리는 그 전에 있었다. 미스코리아 한 당사자의 부모가 대회가 끝난 뒤 심사위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제의했는데, 심사위원장이 거절한 적이 있었다. 이 식사와 그 식사가 혼동되어 '어울렸다'고 소문이 난 모양이다.
미스코리아 이야기가 길어진 것은 김 내정자 대신 해명을 하자는 취지가 아니다. 한국일보사가 53년간 개최해오고 있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명예와 도덕성에 관한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 검찰총장 내정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검증을 앞두고 소위 '논란의 깜냥'도 안 되는 사실들이 인터넷으로, 댓글로, 퍼나르기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이미 종식된 성의 상품화 논란과 올해 초 세인의 관심을 모았던 고 장자연씨 사건 등을 연상하게끔 "미스코리아와 어울렸다" 운운하며 말초적 흥미를 돋워보려는 행태들이 참으로 한심하다.
확인없이 소문 내고 퍼뜨려서야
김 내정자에 대해 검증하고 청문해야 할 사안들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검찰의 중립과 안정, 국제 흐름에 뒤처지지 않아야 할 조직 정비 등에 대한 그의 식견과 능력을 살펴야 할 것이다. 물론 개인의 도덕성과 재산형성 과정 등 공직자로서의 소양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 전제다. 하지만 소문과 억측에 근거하여 불필요한 생채기만 남긴다면 그 누구에게도 이로울 게 없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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