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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히로히토와 맥아더' 11번 마주앉은 히로히토와 맥아더…그들의 뒷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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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히로히토와 맥아더' 11번 마주앉은 히로히토와 맥아더…그들의 뒷거래

입력
2009.08.02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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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시타 나라히코 지음ㆍ권혁태 옮김/개마고원 발행ㆍ296쪽ㆍ1만6,000원

"내 한 몸은 어찌 되어도 좋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裕仁ㆍ1901~1989)가 일제 패망 직후 점령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맥아더에게 했다는 이 발언은 천황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보여주는 '미담'으로 널리 유포돼 있다. 맥아더가 큰 감동으로 마음이 흔들렸다고 말한 히로히토의 이 발언은 과연 사실일까, 조작된 신화일까. 히로히토는 어떻게 전범재판에 기소되지 않고, 평화헌법 아래 민주주의와 평화의 새 상징으로 어엿할 수 있었을까.

도요시타 나라히코 일본 간사이가쿠인(關西學院)대 법학부 교수가 쓴 <히로히토와 맥아더> 는 2차 세계대전 종결 후 히로히토의 권위와 권력을 이용하려 했던 맥아더와, 미국에 적극 협조함으로써 천황제를 사수하려 했던 히로히토 사이의 '전략적 거래'를 파헤친 책이다. 대개의 히로히토 연구가 전쟁책임을 다루고 있는 데 반해 이 책은 처음으로 천황의 전후책임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저자가 방대하고도 꼼꼼한 문헌ㆍ자료의 비교, 대조를 통해 실증하는 히로히토와 맥아더의 거래는 11차례에 걸친 양자 회담을 통해 이뤄졌다. 패전 후 히로히토는 두 가지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는데, 첫 번째 위기는 도쿄 전범재판 기소 여부. 이에 히로히토는 "자신은 입헌군주였기 때문에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고, 침략전쟁은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군부가 행한 짓이었다. 그렇지만 전쟁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모순된 논법을 동시에 구사함으로써 이 위기를 헤쳐나간다. 저자에 따르면 "맥아더가 '무대 뒤'에서 '재판 대책'의 일환으로 등장시킨 히로히토의 '모든 책임' 발언은 절대적 효과를 발휘"했고 히로히토는 세계를 감동시키며 전쟁의 법적ㆍ도덕적 책임으로부터 방면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위기는 사회주의 세력의 확산이었다. 히로히토는 사회주의가 일본의 안전보장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여겼는데, 이는 곧 천황제의 위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저자는 히로히토가 이 위협에 맞서기 위해 미군 주둔이라는 해법을 선택, 미군의 영구적 주둔을 위해 정치적 개입을 서슴지 않았다고 말한다.

히로히토는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패배는 일본에서 혁명, 전쟁재판, 천황제 타도로 이어질 것이라고 판단, 일본 측이 미군 주둔을 자발적으로 요청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는 일본을 아시아의 '반공 요새'로 삼고자 한 미국의 이해관계와 딱 맞아떨어졌다.

패전 후 인간의 자리로 내려온 히로히토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휘둘렸던 식물 천황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후 일본 정치ㆍ외교의 틀을 만들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퍼즐 맞추기처럼 가설을 증명해가는 방식이 하도 치밀해 시원스런 주제에 비하면 읽어나가기엔 다소 갑갑한 감이 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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