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유통업체들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이 사실상 전면 중단 사태를 맞고 있다. 지방에서 시작된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서울 및 수도권으로 번지는 양상인데다 사업조정 대상도 신규 점포에서 기존 영업점으로 불똥이 튀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SSM을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골목상권을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서민행보에 나선 정부와 여론의 지원을 받은 다윗(자영업자들)이 골리앗(대형유통업체들)을 물리치는 양상이다.
3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 이마트가 이날 ‘이마트 에브리데이’ 쌍문점을 개장한 것을 끝으로 대형 유통업체들의 SSM 신규출점이 사실상 전면 중단됐다. 신세계 관계자는 “올해내 30개 점포를 오픈할 계획이었으나 대외 변수가 워낙 많아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현재로서는 추가 출점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롯데슈퍼도 이번 주 예정됐던 서울 상계 2동점과 가락점의 오픈을 보류했다. 롯데슈퍼 관계자는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하반기에 20개 정도를 추가 오픈할 계획이었으나 현재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의 집중적 타깃이 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올해 100개 점포 추가 출점이 목표였지만 40여개에 그치고 말았다.
지방자치단체들의 SSM 규제 움직임도 뚜렷하다. 충청북도는 이날 도내 대형마트 점장을 불러 SSM 출점을 자제해야 한다는 민심을 본사에 전달해줄 것을 요청했고, 마산시는 SSM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조례제정 방침을 발표했다. 청주시도 대형마트와 SSM에 교통부담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유통업체의 SSM 신규출점이 사실상 중단됐지만 중소기업중앙회에 접수되는 사업조정신청 건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이날 현재까지 SSM에 대해 사업조정 신청을 낸 지역은 모두 15개에 이른다. 기존에 알려진 청주, 인천, 서울 송파구 가락동 등 10곳 외에 추가로 천안 신방동, 용인 수지, 서울 상계동과 서초동에서 사업조정 신청이 들어왔다. 이 중 11곳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4곳은 롯데슈퍼를 상대로 한 것이다.
서울 영등포에서는 서울시 서점조합이 내달 8일 문을 여는 타임스퀘어에 오픈 예정인 교보문고를 상대로 사업조정 신청을 내기도 했다. SSM에 대한 중소상인들의 집단반발에 고무된 것으로 보인다.
중소상인들의 집단반발과 지자체의 규제 방침 등으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유통업체들도 상생방안을 찾고 있으나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안으로 부상했던 프랜차이즈형 SSM의 경우 창업비용이 10억원 이상인데다 매장관리에 어려움이 있어 유통업체나 자영업자 모두 만족스러운 방안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유통업체들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신규 출점 반대뿐아니라 기존 영업점의 품목 및 영업시간 제한 요구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롯데슈퍼 관계자는 “신규출점은 보류할 수 있지만 기존 점포의 영업시간과 판매품목을 제한하는 것은 손 발을 묶어 놓고 장사하라는 말과 같다”며 “자칫 선례를 만들면 비단 SSM뿐 아니라 전체 유통업에 대해 비슷한 요구와 집단 반발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중앙회는 양측의 상생방안 모색을 위해 중소상인들의 협상단을 구성, 8월 초 유통업체측과 자율조정에 들어갈 예정이나 양측의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대립해 원만한 합의를 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