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30일 거의 내정되다시피했던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의장직을 스스로 포기함에 따라 인권위의 국내외적 위상 추락이 불가피해졌다. 취임 당시부터 자격 논란을 빚었던 현병철 인권위원장도 조직 장악력 약화는 물론 '함량 미달'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인권위가 이날 공식적으로 밝힌 불출마의 변은 "현 위원장 대신 다른 인사를 추천하는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국제기구에서의 역할보다는 국내 인권 현안 해결에 힘을 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 위원장이 직접 나설 경우 당선이 불확실하고 다른 후보를 내세우는 것도 비난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따라 아예 후보를 포기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인권위가 국제인권기구 의장 선출에 현직 위원장 대신 다른 후보를 검토했다는 것만으로 위원장의 자격 미달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어서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 위원장은 주로 대학 행정에 관여해오면서 인권 부문의 현장 경험이 거의 없고 인권과 관련한 국제교류 경험도 전무하다. 이 때문에 순수 국내파인 현 위원장이 국제기구 의장을 맡는 것에 스스로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인권위는 현 위원장이 의장직을 맡는 대신 국제 무대에서 실제로 활동할 '의장 직무대행'을 따로 두는 안까지도 검토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현 위원장이 ICC 의장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꼴"이라며 "임명 당시부터 제기됐던 자격 미달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국가인권위와 한국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적 평가가 급격히 추락할 수밖에 없게 됐다. ICC는 세계 120여 나라의 국가인권기구들의 유엔 내 대표기구로서, 인권위는 그 동안 의장국 수임을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꾸릴 정도로 의욕을 보여왔다.
ICC 의장은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맡는데, 2010년부터 3년간 책임질 차기 ICC 의장국은 아ㆍ태지역으로 배정돼 한국이 의장국 수임이 유력한 상태였다.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국제사면위원회 등이 최근 가뜩이나 한국의 인권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확실했던 의장국 입후보마저 스스로 포기해 국제적 망신만 샀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준비되지 않은 위원장'으로 인해 다른 기관의 인권상황을 감시해야 하는 인권위가 앞으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가뜩이나 다른 기관에 대해 강제적 조치 권한이 없이 권고밖에 못하는데, 앞으로 어느 기관이 인권위 말을 들으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애초 자격 미달의 위원장을 임명한 청와대에 대한 비난도 커지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인권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인권과는 무관한 무색무취의 위원장을 앉힌 밀실 인사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는 "인권이 보편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국내 인권은 물론 국제적 감각을 두루 갖춘 사람을 임명해야 했다"며 "또 한번 대통령의 잘못된 인사 방식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장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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