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이 29일 정치권을 비판한 데 이어 30일에도 정치권의 리더십 및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문제를 언급하며 연일 발언의 수위를 높이자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평소 소신을 밝힌 것이지만 최근 정부 및 사회 각층의 투자 확대 압력에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의 발로라는 분석도 나온다.
조 회장은 30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리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2009 제주 하계포럼' 기자 간담회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일자리를 가진 사람에 대한 과보호가 너무 심하다"며 "해직 당할 일이 없으니 '농땡이'를 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노동시장을 법으로 이래라 저래라 규제하면 일자리만 더 줄어들기 마련"이라며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에 앞서 29일 개막사에서도 "우리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문제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며 "강성노조만이 온 나라의 주인인 양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가 어떻게 안심하고 10년, 20년이나 생각해야 하는 투자를 할 수 있겠느냐"고 쓴 소리를 했다.
이처럼 재계의 수장인 조 회장이 연일 목소리가 높이는 것은 평소의 소신이 드러난 것이라는 게 주변 설명이다. 조 회장도 이날 발언의 진의를 묻는 질문에 "외자는 줄고 잠재성장률은 떨어지고, 지금 우리의 상황은 굉장히 염려스럽다"며 "세계 1등 제품을 많이 만들어내는 우리나라가 왜 1등 국가는 못 되는 지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온 나라가 갈등 구조인데 잠재성장률이 올라갈 리가 만무하다"며 "자기가 속한 단체의 잇속만 챙기려 해서는 안되며 전체가 잘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조 회장의 발언은 최근 정부와 사회 각계에서 재계에 투자 확대를 주문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재계의 공식 반응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맥상으로 정치가 제 할 일을 하고, 강성 노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투자 확대는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밖에 없다. 조 회장도 "투자는 선심 쓰는 게 아니라 돈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수지가 맞는 비즈니스만 있으면 투자는 하지 말라 해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는 기업이 알아서 할 테니 더 이상 압박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 같은 조 회장의 발언에 대해 다른 곳을 비판하기 앞서 재계는 과연 제 할 일을 다 하는 지를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이날 "경제 분야의 책임자께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과연 우리 정치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정치의 권위를 더욱 훼손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고 반박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재계의 입장은 투자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면 투자를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파문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서귀포=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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