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잠들어 있는 소망교회 묘지에 갔었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부재(不在)는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주었다. 10대에 만나 오십여 년을 함께 지낸 그를 보내며 우리는 인생과 죽음, 그리고 장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소망교회 묘지는 그 동안 신문에서 몇 번 기사를 읽었지만,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같이 갔던 십여 명의 친구들도 모두 처음 와 본다고 했다. 우리는 '소망교회 식 장례'가 가장 바람직한 장례인 것 같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1,300여 명이 잠든 8.9평 묘역
소망교회 묘지는 경기도 양평의 교회 수양관 앞마당에 있다. '소망교회 성도의 묘'라는 비석이 서 있고 비석 주변에 자갈을 깔아 그곳에 화장한 골분을 뿌리게 되어 있다. 묘역은 8.9평에 불과하지만 1995년 2월 묘지를 만든 이래 1,300여 명이 잠들어 있다.
묘역에는 성묘객들이 놓고 간 꽃들이 아름다운 꽃밭을 이루고 있다. 꽃에 달려 있는 리본마다 '사랑' 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하루에 몇 차례씩 성묘객들이 예배를 올린다. 1,300여 명의 성도가 함께 있으니 그 누구도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몇 년 사이 장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요란한 장례와 묘지를 가문의 융성과 효도의 상징으로 여기던 인식은 거의 사라지고,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는 장례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화장장 예약이 힘들 만큼 화장률이 높아졌고, 수목장 등으로 묘지를 따로 만들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십여 년 전 일본에서 연수하는 동안 나는 그들의 가족 묘에 관심을 갖고 여러 차례 칼럼도 썼다. 일본의 가족 묘는 가문의 이름을 새긴 돌 비석 아래 여러 명의 골분 상자를 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꽉 차면 오래된 상자부터 묘역에 뿌려 자리를 만든다. 나는 그들의 방식이 개인마다 묘를 만드는 우리나라에 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가족 묘도 점점 늘어나면 국토잠식이 심각할 수밖에 없다. 지난 몇 년 사이 이런 가족 묘가 우리나라에도 많이 보급됐는데, 돌로 만든 묘지가 늘어나면 재래식 봉분보다 자연에 더 부담을 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장 최근에 제안된 장례 방식은 수목장이다. 나무 밑에 화장한 골분을 묻어 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됨으로써 자연의 순환에 참여하게 되는 수목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있다. 각 지방에서 수목장림 개장을 준비하고 있어서 앞으로 수목장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소망교회가 묘지를 개장하던 14년 전 화장을 기피하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소망교회 식 장례는 혁명적이었다. 사실 그 방식은 지금도 혁명적이다. 10평도 안 되는 묘역이 수천 명 수만 명 신도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될 수 있으니 수목장보다 훨씬 앞서간 방식이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사회 개혁의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하다.
가족묘지를 준비했던 신도들 중에는 묘지를 팔아서 교회에 헌금하고 교회묘지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 교회는 명단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이한빈 전 부총리 등 많은 유명인사들도 그곳을 선택했다.
다른 교회들도 이런 묘지 조성
소망교회 식 묘지는 다른 교회들에도 영향을 주었다. 서울의 연동교회와 신양교회, 대구의 동일교회 등이 이런 묘지를 만들었고 신도들의 호응도 높다. 장례 방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빠르게 변화하는 시점에서 각 종교의 역할이 기대된다.
소망교회 묘지를 떠나며 우리는 그 묘지에 잠든 사람들, 하늘나라에 간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지구를 지켜가는 공동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외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가장 위로가 되었다. 아름다운 꽃들과 하루 종일 이어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예배 속에서 우리 친구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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