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 동안 여러 명의 북한이탈 대학생을 면담했다. 2003년에 북한이탈 청소년 90명을 설문 조사한 적이 있는데, 6년이 지난 지금 이들을 추적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당시 8~24세의 북한이탈 청소년이 모두 520여명 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적은 수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6월 현재 6~20세 탈북 청소년은 1,50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초ㆍ중고생이 1,100 명, 대학생(20세 이상 포함)이 400 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북한이탈 주민 2만 명 시대를 맞아 탈북 청년 숫자도 갈수록 늘고 있다.
통일 후 북한 돕기 희망
6년 전의 90명을 다 추적할 수는 없었다. 거의 절반만 재조사가 가능했다. 이리저리 이사하면서 연락처가 바뀌기도 하고, 미국 영국 동남아 국가 등에 체류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도 남한 학생처럼 외국에 대한 동경과 영어권 나라의 교육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도약 시키려는 강한 욕망을 가진 듯싶다.
조사를 통해 여러 긍정적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6년 전 입국 후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한 생활에 불만족 한다고 응답했던 학생의 절반이상이 이제는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하는 '주변형'이 줄어들고, 남한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남한 동화형'이 늘고 있었다.
남한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데 중요한 요인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남에 선뜻 응한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북한식 억양을 거의 쓰지 않았다. 특정 대상과의 준비된 자리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들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쉽사리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시간은 이들을 남한식으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신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이 남한 사람들과의 교류에 득 될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서다. 남한 학생들 사이에 존재하거나, 존재할 지도 모르는 자신들에 대한 편견을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오해와 편견은 그들 내에도 존재할 수 있다. 바쁜 일상 때문에 개인적이며 사무적으로 비치기 쉬운 우리의 모습에서 그들은 무시와 배타라는 의도치 않은 코드를 읽을 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남한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는 양쪽 모두에 있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속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남한친구가 있다는 학생의 얼굴에 퍼진 자신감과 행복감은 많은 것을 말해주는 듯 했다.
가족의 존재 여부도 이들의 적응에 중요해 보였다. 아동ㆍ청소년기에 부모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지만, 미지의 땅에 툭 던져진 이들에게는 더욱 절실할 것이다. 남한에 부모 없이 입국하여 외로움과 홀로서야 하는 부담감을 혼자 감당해야 했던 것이 가장 서러웠다는 고백은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은 정부의 지원과 종교단체의 관심에 고마워하며 열심히 남한을 익히고 있었다.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그 곳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어했다. 남한에서 성장하며 교육 받는 이들이 결국 통일시대에 북한을 부흥시킬 역군이 아닐까 생각했다.
'남북한의 미래' 적극 지원을
이들의 '준비'를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학부터 장학금, 학습지원 프로그램, 멘토링 서비스 등을 확대했으면 좋겠다. 전공이나 학교를 잘못 선택한 학생이 학년을 낮추어 타 대학으로 편입하는 경우에도 학비지원을 계속하고, 우수 학생들의 대학원 진학도 적극 지원했으면 한다.
면담 후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배달 아르바이트를 위해 오토바이에 오르는 그들의 땀 배인 뒷모습에서, 유원지 펜션 아르바이트를 위해 밤 늦은 시각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하는 그들의 잰 발걸음에서 그들의 밝은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우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홍순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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