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을 들 때 오른발로 땅을 힘차게 차야지. 오른팔은 뒤로 자연스럽게 돌리고."
제39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6일째 경기가 열린 30일 수원구장. 경기 시작 1시간 30분 전인 오전 11시30분께 한 부녀가 그라운드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이 던진 공을 받으며 투구폼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첫 경기로 열린 광주일고-대구상원고의 1회전에 앞서 2009 미스코리아 진 김주리(21)씨와 부친 김현철(50)씨가 시구와 시타를 맡았다. 김현철씨는 광주진흥중 시절 3년간 그라운드를 누볐던 야구 선수 출신으로 포수를 제외하고 전 포지션을 소화한 만능 플레이어였다.
"공을 잡아본 게 군대에 있을 때 이후 얼추 27, 28년 만인 것 같아요. 더구나 이렇게 딸과 함께 그라운드에 서니 무척 설렙니다." 김현철씨는 철도청-해태 등에서 야구를 했던 엄평재(투수)씨와 중학교 동기다.
김현철씨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안의 반대로 야구를 접었지만 지금도 애정만은 변함이 없다. 부인 정은경(46)씨는 "주리 아빠가 국내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이승엽 선수의 일본야구경기도 자주 본다"고 귀띔했다.
야구선수 출신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덕분인지 주리씨의 실력도 예사롭지 않았다. 허세환 광주일고 감독은 "미모만큼이나 야구센스가 대단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주리씨는 "야구는 직접 해본 적은 없지만 영국 유학 시절 라운더스(영국에서 하는 야구와 비슷한 스포츠), 크리켓 등 여러 종목을 경험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들 부녀는 1시간의 '맹훈련'을 거친 뒤 마운드와 타석에 섰다. 이용혁 주심의 '플레이 볼' 선언에 따라 주리씨는 힘차게 공을 던졌고, 김현철씨는 딸이 던진 공이 원 바운드로 대구상원고 포수 김민수의 미트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 방망이를 휘둘렀다.
"봉황대기 덕분에 시구를 해봤는데 아주 재미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에게 개인지도를 열심히 받아서 저만의 폼을 만들 생각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프로야구 경기 때도 마운드에 서보고 싶어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는 주리씨는 행복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수원=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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