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 일은 기적에 가깝다. 어제까지도 얼굴을 몰랐던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대로 달리 살아 온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게 되는 것 자체가 벌써 극적이다.
차 한잔, 물 한잔을 함께 마시면서 인사를 나눈다. 자장면을 먹다가 싸운다. 스테이크를 썰다가 청혼한다. 김치찌개를 나누어 먹으면서 휴가 계획을 짠다. 남녀가 만나고, 같이 살게 될 때까지는 이처럼 무수히 많은 메뉴를 함께 먹고 마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음식 궁합'이다. 흔히 식성이 맞으면 빨리 친해지고 잘 산다고들 하지만 식성이 맞는 것 이상의 '음식 궁합'이 분명 있다. 두 사람이 태어나서 먹고 자란 입맛, 그들의 엄마가 반찬 간을 어떻게 하느냐, 할머님은 고향이 어디였는지, 이런 자잘한 사실들이 모여 두 사람의 입맛에 미세한 차이를 만든다.
우리 엄마는 순 서울 사람. 음식의 간은 늘 간간하고 얌전하게, 자극적인 맛보다는 깔끔한 맛을 지향하는 식습관을 갖고 사셨다. 내 아버지는 이북에서 태어났다. 전쟁 터지고는 할머니 등에 업혀 남쪽으로 왔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북식 입맛은 1950년생인 아버지의 혀에 고스란히 전수된다.
이북 입맛은 당장에 맵고 짜기보다는 조용하고 깊은 맛을 중요시 한다. 처음 먹어서는 밍밍하다고 느낄지 모르는 그런 맛. 부모님의 입맛이 만나서 나를 만들었다. 나는 서울식으로 얌전하게 간을 한 반찬에 평양냉면이나 만두를 곁들이는 것이 제일 맛있다.
내 남편은 아버지 고향이 서울, 어머니는 강원도 분이다. 남편의 친할머니는 함경도에서 태어나셨다. 그러니까 이 남자의 입맛은 어쨌든 평안도, 강원도, 서울이 믹스된 간간하고 심심한 맛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연애할 때, 둘이 의견 부대낄 일이 생겨도 밥 한 끼 먹고 나면 서로 풀리곤 했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양쪽 집안 모두 '반주'를 즐기는 어른들이셔서 기분이 좋은 날에는 찌개 하나 끓여 놓고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한라산이나 잎새주를 따기도 한다. 둘 다 입맛이 없는 날에는 쌀죽을 희게 쑤어서 메추리알 장조림과 먹는다.
남도에 음식 취재 갔다가 들고 온 장아찌는 피클처럼 잘게 썰어 먹는다. 매끄럽고 간간한 안동국시가 먹고 싶다고 동시에 말한다. 작년 가을에 담근 더덕주를 마시면서 아홉 달 전을 추억한다.
그러니까 '음식 궁합'은 결혼 생활의 가장 큰 도우미인 셈이다. 결혼하고 싶은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사주를 보기에 앞서 둘이서 밥이나 많이 먹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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